살아가면서 처음 가보는 곳인데도 어떤 곳은 낯익은 기억에 놀랄 때가 있다.
언젠가 지나쳐 본 듯한 낯설지 않는 환경은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늘 지나치던 곳인데도 처음 느끼는 한 순간을 접했을 때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할 때가 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시선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느끼게 되고 안목의 부족함을 돌아본다.
얼마 전에 필자가 출간한 산문집을 나눠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책을 열기도 전에 '왜 이제야 보이는지'란 제목만 보고도 무릎을 치는 것을 보았다.
내용은 열어보지 않아도 왠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이렇게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것은 아마도 살아가면서 그간에 보이지 않았던 일들이 시야가 넓어지고 안목이 트여 오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안목으로 상대를 평가한다.
그래서 자신의 잣대로 기대치에 부응할 때는 좋은 사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손가락질을 해댄다.
손가락을 들기 전에 상대방을 통해 나를 비춰 보자.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많은 상대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 또 다른 성숙된 나를 만들어 간다면 꽤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때로는 수없이 많은 나는 모자이크를 하다가 군더더기가 붙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겠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또 말끔히 손질되어 있을 테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그렇게 상대방을 거울 삼아 무수한 나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 시야는 더욱 넓어지고 안목의 깊이가 커진다면 마음의 창은 더 활짝 열릴 것이고, 빈번하게 손가락을 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덜 것이다.
앞으로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직면했을 때, 때로는 경악하고 또 때로는 놀라움에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보이다니…' 라고.
독일의 문호 괴테가 마지막 남긴 말은 '좀 더 빛을'이라고 한다.
그 순간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창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해져 가는 빛이었다.
그 빛의 소중함이 왜 그제야 절실해 졌는지…. 우리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의 절박함을 향해 '왜 이제야 보일까'라고.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을 감으면 보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의 눈이 또 있기 때문이다.
구연옥 시인.덕촌보건진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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