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이 흔들리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 가장 뛰어난 오케스트라'라는 자부심을 지금의 대구시향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부산시향과 대전시향.부천시향이 달려나가는 동안 대구시향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대구시향은 단원들이 지휘자 박탕 조르다니아에 대한 불신임 결의를 하는가 하면 연습을 한때 집단 거부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본지 28일자 16면 보도〉
2002년 1월부터 대구시향의 지휘봉을 잡은 조르다니아는 지난 2년 동안 비교적 조용하게 시향을 이끌어왔으나 지난 연말 오디션을 거친 뒤 수석.차석.평단원 자리 일부 교체라는 충격 요법을 가했다.
단원 서열 교체는 해촉(재위촉 제외)보다 강도가 약하지만 2년마다 반복되는 오디션을 통한 해촉 가능성에 따른 신분 불안감과 조르다니아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단원들이 집단 행동이 나타난 것이다.
단원 ㅈ씨는 "세계적 대가라고 알려진 조르다니아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지휘에서 무성의한 모습을 보여왔고 실력이 검증되지 않는 협연자 및 객원 지휘자를 선정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악기와 같은 존재인데 이처럼 단원과 지휘자간에 앙금이 있는 상황에서는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다.
대구시립예술단의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기획을 통해 시민들에게 다가서야 하는데 대구시향은 지금 어느 누구도 경영자적인 자세를 갖고 관객 동원에서부터 이벤트 마련 등을 챙기는 이가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2월 열린 대구시향의 송년음악회. 객석은 적어도 3분의 1 이상 비어 있었고 그나마 머리를 짧게 깎은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 학생은 "팸플릿 얻어가는 숙제 때문에 왔다"며 부산을 떨었으며 공연장 분위기는 학생들 때문에 더욱 어수선했다.
이날 음악회에서 만난 우종억 영남작곡가협회 고문(대구시향 제2대 지휘자)은 "대구시향과 연간 12주 계약을 체결한 박탕 조르다니아는 계약 조건만 볼때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러 온 선생님 격"이라며 "연중 함께 단원들과 지내며 음악을 조율하고 수준을 높여줄 상임 지휘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향단원직은 철밥통?
문제는 지휘자에 대한 대구시향 단원들의 보이콧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시향은 지난 1996년 이후 라빌 마르티노프와 보구슬라브 마데이, 박탕 조르다니아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3명을 지휘자로 영입했으나 누구도 단원들의 불신임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한 음악인은 "100% 완벽한 지휘자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시향 단원들이 역대 지휘자 모두에게 반기를 들어왔다는 것은 결국 시향단원들의 마음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단원들은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분마저 불안해서야 음악에 전념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향 단원이 됐다고 해서 평생 직장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대구시향은 대구지역 기악 연주인이라면 반드시 들어가고 싶은 단체이다.
외국에서 고생해가며 공부를 하고 귀향했는데 시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음악인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자신을 대구시향 서포터스라고 소개한 한 독자는 "일부 단원이 선동해 지휘자를 흔드는 관행이 되풀되는 것에 크게 실망해 서포터스에서 탈퇴하고픈 심정"이라고 비판했으며, 음대교수 ㅇ씨도 "단원들은 시향을 생계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예술인.음악인이라는 자부심부터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 사랑 되찾아야
대구시향은 세계적인 거장만 지휘자로 영입하면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3명의 외국인을 지휘자로 모셔왔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다른 방향에서 대구시향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수술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것이 적지 않은 음악인들의 생각이다.
낙후된 사무행정 조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획 3명, 홍보 1명의 인력을 두고 있는 부산시향과 달리 대구시향은 별도의 기획 및 홍보 인력을 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조례와 제도를 지역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홍종흠 대구문화예술회관장(대구시립예술단 부단장)은 "대구시향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지휘자의 거취 문제는 계약기간 만료(2004년말) 이후 검토할 사안이며 기획인력 확충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시 재정 상황이 나아지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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