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ㅇ(44.대구시 수성구 고산동)씨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의 학원비 영수증만 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겨울방학들어 50만원을 주고 중학교 1학년생 딸에게 학원에서 영어.수학.교과종합수업반 강의를 듣도록 했는데 아들도 주 2회 영어.수학 강의에 월 30만원이 나간 것. 교재비 등 다른 비용까지 합하니 월 100만원이 고스란히 학원비로 지출됐다.
연봉이 3천500만원 정도된다는 ㅇ씨는 "초교생인 아들까지 가세하면서 월급의 근 절반이 학원비로 나가는 형편"이라며 씁쓸해 했다.
방학때 교과과정을 미리 앞당겨 배우려는 '선행학습' 붐이 일면서 초등학생들까지 영.수 학원 등으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
초등학생 전문 영어학원인 대구의 ㅁ학원. 오전 9시부터 하루 4시간씩 집중적으로 영어회화.단어.문법을 가르치는 이 학원의 방학특강은 지난 12월말 정원을 다 채웠다.
월 40만원, 10여명 가량의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특강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끼어 있을 정도. 주2회 13만원을 받는 일반 강좌의 수강생 600여명 가운데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 가장 많고, 후보 수강생까지 줄을 서 있을 정도다.
학원 관계자는 "강의만 잘 소화하면 중학교 1.2학년 과정까지 앞서 나갈 수 있다"며 "이미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선행학습은 필수"라고 했다.
전체 수강생 중 30% 가량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채워진 대구의 ㄱ학원은 강의가 끝난 뒤 실제 중학교 중간.기말고사 수학 기출문제로 시험을 친다.
매주 2일 6시간을 수업하는 이 학원의 관계자는 "방학동안 집중적으로 강의를 들으면 중학교 한 학기 공부를 미리 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학원수강료가 가계를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고통을 호소하고, 또 겨울방학을 되찾아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교육청이 월 20시간 기준 5만6천원(교재비 1만8천원 포함)으로 수강료 상한선 지침을 정해놓고 있지만, 관련 법규상에는 수강료를 학원장이 자의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수강료는 지침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해 3/4분기 '도시근로자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근로자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12만5천원으로 2002년 같은 기간의 9만원에 비해 39%나 뛰었다.
한편 방학이 실종된 아이들의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높다.
회사원 이모(41.달서구 용산동)씨는 "결석을 하거나 숙제를 못해 가면 학원에서 퇴원 등 불이익을 주는 바람에 초교 6학년인 아이가 학교에 갈 때보다 더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있다"며 "밤 9시나 돼서야 아이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생 딸을 둔 주부 최모(39.수성구 수성동)씨도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느라 정작 학교에서 주최하는 자연체험 프로그램에는 보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구시 교육청 최재섭 장학사는 "교실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부모와 함께 경험하고, 자기의 적성과 소질을 개발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방학의 본래 취지"라며 "초등학생까지 선행학습 등 사교육에 몰리는 세태를 이제는 제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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