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1년전떠난 딸에게

흐르는 세월에 참사의 아픔이 내 기억 속에 바래어져 흐릿하게 망각되어 갈 때임을 말하는 것인가? 새끼 떼인 어미소도 새끼 찾아 우는데 펄펄 끓던 양은솥이 싸늘하게 식어지듯 억지로 잊으며 살라고….

잊을 만하면 연이어 터지는 대형참사의 이면에는 우리의 이런 마음 가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잊으면 안된다.

잊으려 해서도 안된다.

되새기고 되새겨 우리를 지켜야 한다.

안전의 성지 대구, 생명의 도시 대구를 건설해야 한다.

가슴에 묻은 자식의 무덤을 망령이 든다 한들 내가 어찌 잊을까? 아픔은 아픔으로 남겨두어야만 사랑스런 자식의 변함없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겠기에 망각의 세월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엔 이 세상의 제왕 같던 아버지가 내가 조금 성숙하니 왜소해 보이다가 철이 들어 다시 보니 높게 높게 보이고 '나는 내가 어린이 되면 아버지처럼 가정을 꾸려갈 수 있을는지' 했던 나의 고민을 너도 따라 했었지.

'남의 것을 부러워 하지 말고 내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작은 것에도 고마워 하고 감사할 줄 알아라' '191위(位)의 영혼에게 위안이 되고 사랑받는 혼령이 되어라'.

생전에도 사후에도 애비는 쓴소리만 한다.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작년 2월 18일 새벽 찬공기를 호흡하며 뿜어내던 입김을 찾아본다.

일년이 그렇게 갔구나. 길다 짧다는 생각 없이 눈물로 울부짖으며 엄마 앞에서는 눈물 숨기며 그렇게 일년이 갔구나!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우리 모두가 범인이다.

이 애비까지 포함해 우리의 회개와 속죄는 안전한 지하철, 안전한 세상을 희생의 교훈과 함께 자자손손 만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다큐멘터리인 '메모리즈-2.18 대한민국 지하철참사'의 현종문 감독은 '참사 수습 과정은 또하나의 참사였다'는 압축된 표현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부연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명쾌한 지적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참사의 실상을 직시해야 할 인사들 중에도 바로 보지 못하고 더러는 바로 보지 않으려 하는 이기심을 갖고 있어 우리 사회를 혼란케 하고 불행하게 한다.

그들이 왜곡하는 결과는 시민들의 의식을 혼동케 하고 눈과 귀를 어둡게 했다.

참여를 잘못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끼어들어 혼란스럽게 할 것 같으면 끼어들지 않는게 현명하다.

혜안을 가져야 한다.

지혜와 사랑을 가져야 한다.

무심코 던지는 아이들의 돌멩이에 개구리는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맞은 것은 맞다고 해야 함에도 우리는 너무도 이기적인 이해 타산에 편승해 O, X를 너무도 편리하게 선택한다.

가족의 시신을 수습해 분향소를 차린 유족을 부러워하던 실종자 가족들은 유품 한 점이라도 찾아져 사망을 인정받으려는 한가닥 희망을 가졌지만 이마저도 쓰레기 자루에 담겨 버려졌다.

물청소까지 했다.

점퍼, 가방, 신발, 도시락, 휴대전화, 신분증 등 지천으로 널려 있던 169점의 유골과 유품을 쓰레기 처리한 것은 희생자의 영혼과 우리의 양심을 쓰레기로 함께 버린 것이다.

이 나라 경찰을 믿을 수 없어 희생자 가족들이 지하철 중앙로역사에 기거하며 지하 3층 사고 현장을 지켜야 했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어야 하고,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수습해야 할 공복의 집합체인 사고수습대책본부는 방화범 김대한보다 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집단처럼 비쳐졌기에 우리의 아픔은 더 컸고 미래는 암담했다.

명명백백한 증거 인멸과 현장 훼손을 지금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있다.

중앙로 역사 지하 3층엔 우리의 버려진 양심과 도덕성이 희생자의 영혼을 울리고 있다.

돈, 돈, 돈…. 요즘 한반도를 휘몰아치는 검은 돈바람이 이판사판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잘도 파헤쳐지는 것을 보면 참담한 마음 지울 길 없다.

'아니야, 열심히 수습하려 했던 노력이 가상해' '모르고 한 것이 분명해'. 땅 땅 땅 두들기던 재판장의 방망이 소리가 아직도 우리의 고막을 찢는다.

이 땅에 다시 이런 아픔이 없는 일 그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사랑이다.

2.18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우리의 마지막 사랑을 약속하자.

※필자는 지난해 대구지하철참사로 딸(윤지은.당시 25세)을 잃었다.

윤근(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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