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불신의 시대를 살면서

한달 전 30년 직장을 명예퇴직한 선배가 퇴직금으로 체인 통닭집을 오픈했는데 손님이 없어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경주에 갔다가 매번 들르는 소갈비집을 찾았는데 그 큰 홀에서 우리 네 사람만 식사를 하였다.

대대로 내려오는 유명한 한우 갈비집으로 평소 같으면 점심시간에 줄을 서야 했다.

지금 우리는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약속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는 문제 있는 외국산 고기들은 수입금지했고, 국산고기도 문제 있는 것은 폐기처분 했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얼마전 언론보도에서 판매금지된 수입 소고기를 몰래 팔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사먹는 소고기 중에 혹 그런 문제있는 고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확률적으로 음식점에서 소갈비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2억분의 1이라고 한다.

그것도 한우 말고 수입쇠고기를 쓰는 음식점에서 말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00만분의 일이니 25번이나 당첨될 확률이다.

비오는 날 벼락이 쳤을 때 맞아죽을 확률보다는 400배나 높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음주운전은 하면서 소고기와 닭고기는 먹지 않는가?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하는 것과 식당에서 소갈비 먹고 광우병에 걸리는 것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죽을 확률이 높은가? 답은 당연히 전자다.

2002년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는 약 1천500만대이며, 이중 자동차 사고로 7천명이나 사망했다.

한해 1만명 이상이 폐암으로 사망하고 이중 가장 큰 원인이 담배다.

지금 소갈비로 점심을 먹고 광우병으로 사망할 경우와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나서 폐암으로 죽을 확률 중 어느 쪽이 높은가? 답은 후자다.

우리는 요즘 매스컴에 너무 의존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광우병 환자가 한 명 발생하면 그 다음날 우리나라 음식점 매출이 뚝 떨어진다.

반면 미국의 대부분 식당들은 여전히 미국산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해먹는다.

조류독감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인체 감염조차 없다.

그나마 조류독감은 끓이거나 조리해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서로간의 불신 때문이 아닐까? 국민은 정부 발표를 못 믿고, 식당은 유통업자의 말을 못 믿고, 사람들은 식당주인의 말을 못 믿는다.

그 고기가 어디서 수입이 됐고, 유통은 어떻게 되는지를 믿을 수 없어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유통되는 모든 고기에 위조방지가 달린 DNA 품질 검사표를 붙여라. 바코드를 읽으면 그 고기가 어느 농장에서 생산됐고, 누가 사육했으며,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일본은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광우병에 우리처럼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정부는 한우가 안전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게끔 알리고, 그 검사절차를 투명하게 하라. 이제 우리는 정부나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우리 눈으로 감시할 때가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자.

정승필(영남대 의대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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