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체험-구미수출원예공사

벌써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부터 화신(花信)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꽁꽁 얼었던 나무가지와 풀숲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꽃들이 외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의 많은 당신'들을 위해 바지런히 몸단장을 하고 있을 꽃들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기자는 그런 기다림에 조급증을 느껴 꽃 냄새를 먼저 맡을 수 있는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구미원예수출공사를 찾았다.

비탈진 들녘 언덕에 늬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이름도 모를 풀틈에 섞여/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시인 노천명은 들국화를 빗대 이렇게 노래했다.

아쉽긴 하지만 이곳 원예공사 온실에는 들국화가 아닌 관상용 국화가 바다를 이루고 있다. 흰색은 물론 빨강.파랑.연두 등 형형색색을 휘감고, 고결한 자태와 향기를 머금은 국화를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곳이다.

구미시에서 출발해 선산읍을 지나 상주쪽으로 30여분 정도 내달리다 보니 국도변에 구미원예수출공사가 나타났다. 미리 기자가 현장체험을 약속해둔 터라 이곳 원예수출공사의 고재영(高載英.61)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나와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고 사장은 곧장 현황설명을 시작했다. 여직원이 끓여온 따끈한 커피와 함께 시작된 고 사장의 국화 얘기가 이어졌다.

기자가 대뜸 "첨단전자공단 도시에 화훼수출은 또 뭡니까?"라고 묻자 고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물론 구미의 주력 수출상품은 삼성의 휴대전화, LG의 디지털 텔레비전이지만 작년에 국화를 전량 일본으로 수출해 54억원의 외화를 벌었다"며 의기양양한 자세를 내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규모는 얼마나 될까? 고 사장은 "5만9천평, 축구장 여덟 개의 크기의 유리온실은 동양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모두들 구미에는 전자제품 생산공장만 있는 것으로 아는데 꽃도 있습니다. 이 점을 꼭 부각시켜 주세요". 고 사장은 지난달 행정자치부로부터 '2003년도 지방공기업 경영대상'과 '경영혁신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곧 이어 원예수출공사의 살림꾼 권태호(58) 생산관리팀장이 기자가 입을 작업복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와 권 팀장을 따라 나섰다.

"원래부터 저는 꽃 전문가가 아닙니더. 그동안 구미시청에서 공무원(5급)으로 근무하다 지난 1999년도에 이곳 전임자가 이민가는 바람에 이곳으로 오게 됐심더. 하지만 인자는 아마 국화에 관한 한 '중간 박사'쯤은 될낍니다". 권 팀장은 묻지도 않았는데도 혼잣말을 내뱉는다.

권 팀장은 먼저 삽수장(揷穗場)으로 안내했다. 국화 모종에서 줄기를 따내는 일이 삽수다. 국화번식의 주된 방법이 삽목이다. 삽목용 삽수체험이 시작됐다.

삽수장에는 8명의 아주머니 직원들이 이미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삽수장에서만 5년차가 됐다는 장원숙(39.옥성면 주아리)씨가 삽수 방법을 일러줬다.

"삽수는 전개엽을 3매 정도 붙인 길이 5, 6㎝정도의 것이 적당합니다". 아주머니 직원들의 삽수 솜씨는 작업 과정이 아주 섬세해야 한다.

기자는 그들의 솜씨에 주눅이 들어 바닥에서 더듬거렸다. 줄기를 따내야 하는데 아예 모종을 뽑거나 망가뜨렸다.

"아이고! 기자 아저씨가 남의 사업 다 망쳐 놓는다"며 손사레를 쳤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권 팀장은 "1년 정도 지나야 삽수 기술자가 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삽수장에는 주로 여직원들이 주로 투입된다"고 귀띔한다.

"삽수는 적심(摘心) 2회째가 가장 충실하고 균일한 삽수가 얻어지기 때문에 2회 적심을 기본으로 하고 3회째까지 채취합니다". 이어 삽목장으로 갔다. 삽목작업은 일의 절반은 기계화돼 자동으로 이뤄졌다. 독일에서 수입된 부엽토를 물과 섞은 후 모판을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부엽토 1t으로 삽목할 상자 180개를 만드는 일이다. 권 팀장은 "삽목장의 온도는 20℃내외가 적당하고 삽목 후에는 충분히 물을 준 뒤 빛을 차단해 건조를 방지하는게 중요하다"며 "삽목 후 1주가 지나면 삽수 전체가 시드는 위조현상을 보이고, 10일정도 지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회복된다"고 말했다.

삽목장에도 7명의 '아줌마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삽수에 발근 촉진제를 바른 후 10㎝ 정도로 삽목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보통 하루에 1만그루 정도 삽목을 합니더. 힘들지예. 남자들은 이런 일 하루종일 못합니더". 그냥 김씨라고만 자신을 밝힌 50대 아주머니는 삽목 작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하지만 처음엔 삽목작업이 말처럼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약 1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 집중하다 보니 온몸이 쑤시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 팀장은 일하는 모습이 못마땅 했던지 "삽목을 규정치 이상이나 이하로 꼽으면 금방 마르거나 썩어 죽는다"며 면박을 주었다.

권 팀장은 "삽아로부터 정식까지는 14~16일 정도 걸리지만 그 이상 길게 삽상에 두면 모가 노화하거나 눈의 선단이 부패한다"며 "정식의 적기는 토양이나 모래에 삽목한 경우 뿌리의 길이가 1.5㎝정도 될 때"라고 해박함을 자랑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아침부터 기자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며 미당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구절을 읊조리자 권 팀장은 "한송이 국화꽃이 수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며 되받았다.

국화 수확장으로 가는 도중 한쪽에서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국화를 정식하기 위해 50㎝ 깊이로 땅을 갈아엎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원예수출공사가 설립된지 5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땅속에선 직경 20~30㎝의 자갈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트랙터 기사인 남호영(45.옥성면 농소리)씨는 "원래 이 일대가 낙동강변 자갈밭으로 쓸모없는 황무지였다"며 "그동안 엄청난 양의 자갈을 골라 냈는데도 아직 자갈이 튀어나와 작업 애를 먹는다고" 투덜댔다.

수확장은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온도.습도.채광.급수 등 모든 생육조건이 자동으로 관리되는 첨단온실로 여기서 자란 국화를 약 3개월만에 수확하는 곳이다.

수확 작업반장인 김교봉(43.옥성면 주아리)씨가 "국화를 10그루씩 뽑아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면 된다"며 작업지시를 내렸다. 국화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100m 정도 지나면 꽃밭 끝부분에 설치된 절단기에 다다른다. 국화는 꽃대를 포함해 75㎝로 규격으로 가지런히 잘린다.

검은무늬병.갈색무늬병.녹병.흰가루병.검은점무늬병, 진딧물.국화하늘소.자벌레 등의 온갖 병충해를 이겨내고 비로소 수확한 것이다. 향긋한 국화향이 콧속으로 확 밀려들어 왔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예부터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비견됐다. 유교적 관점에서도 국화는 의(義)를 지켜 꺾이지 않는 선비정신을 상징해 은일화(隱逸花)라고도 불렸다.

10그루씩의 묶음은 비닐로 포장하고 8시간 이상 물에 담가 수분을 흡수하게 한 뒤 다시 100그루씩 상자에 담아 저온창고에 보낸다. 여기서 하룻밤을 지낸 뒤 부산항을 통해 일본 도쿄와 오사카 등 100여개 화훼시장을 통해 경매된다.

다음날 오전 8시30분 수출용 컨테이너 차량이 도착했다. 20피트 짜리 컨테이너에 100그루들이 상자 400개가 차곡차곡 실렸다. 모두 4만그루에 달한다.

이날 일본 경매시장에서 국화 1그루당 45엔에 거래됐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화로 접했다. 권 팀장은 "평소보다 1그루당 1엔이나 오른 가격에 거래됐다"며 낭보를 전했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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