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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문-숨가쁜 백제궁궐 가상 르포

◇ 숨가쁜 백제 궁궐 르포

전령들의 말밥굽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궁궐로 달려온 전령들이 적군의 진격을 알렸다.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이 기벌포(금강 하구)에 상륙했사옵니다" "당나라 군대가 파죽지세로 사비성을 향해 진격 중이옵니다" 서쪽 해안에서 말을 달려온 전령들은 잇따라 당나라 소정방의 진격과 백제군의 퇴각을 알렸다.

백제군의 저항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자왕은 침울한 표정이었다.

궁궐의 동쪽에서 들리는 소식도 절망적이었다.

당초 고구려로 향하는 줄 알았던 신라의 5만 대군이 남쪽으로 진로를 바꿔 백제를 향하고 있었다.

신하 성충은 탄현(대전 동쪽)에서 신라군을 막자고 주장했지만 의자왕은 듣지 않았다.

왕에게서는 예전의 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왕은 성충의 말을 듣기는커녕 그를 감옥에 가둬버렸다.

의자왕은 즉각 귀족회의를 소집했다.

왕은 서둘라고 재촉했지만, 신하들은 꾸물꾸물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급한 사람은 국왕뿐인 듯 했다.

선대인 무왕 시절부터 시작된 극단적 왕권강화 정책에 귀족들은 국왕을 적대시했다.

'왕권 강화 좋아하시더니 꼴 좋다.

백제에 귀족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신라군이 쳐들어왔다고? 걸핏하면 두들겨 패는데 신라가 참고 있을 리 없지. 국왕의 나라이니 국왕이 지켜야지. 전에 대야성(합천)에서 신라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였다며? 자업자득이야. 왕이 저지른 일이니 왕이 책임지라고 해! '

왕은 귀족들에게 군사를 동원해달라고 호소했다.

귀족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왕은 통사정했다.

귀족들은 듣지 않았다.

코앞에 나.당 연합군이 도착했지만 신하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길고 지루한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

회의장을 빠져나온 신하들은 "국왕의 잘난 아들들이 고위 관직을 맡고 있으니 알아서들 하겠지요"라며 궁궐을 떠났다.

홀로 남은 의자왕은 계백을 찾았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군사는 기껏해야 5천명.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의자왕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계백을 불러라". 맥빠진 목소리였다.

한편 전란에 휩싸인 백제 백성들은 국왕을 성토하고 나섰다.

황산벌 인근의 한 촌장은 "어제까지 신라를 궁지로 몰아세우던 백제가 어쩌다 이꼴이 됐느냐"며 "신라 5만 대군에 맞설 백제 병사가 겨우 5천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한 고을 촌장은 "국왕이 귀족세력을 지나치게 억압해 국론이 분열됐다"며 "왕권강화도 좋지만 귀족을 몰아내고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왕자들에게 고위직을 맡겨 국난을 불렀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백제의 위기와 관련, "개혁이나 왕권강화는 차근차근 시행돼야 한다"며 "각국 국왕들은 백제의 위기를 계기로 정치 안정과 협력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역사신문은 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참고자료: 국립 중앙도서관.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한국역사연구회.역사신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이야기 한국사(이현희). 인물-난-미술-서책으로 읽는 한국사(정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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