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한가운데 들어섰다. 가장 화려한 벛꽃이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계절이다. 대구에서 가까운 경주는 지금 벚꽃으로 뒤덮여 화려한 꽃마을이다. 꽃나들이를 나서면 딱 좋을 시기.
하지만 그저 꽃놀이만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남산을 보지 않았다면 진짜를 보지 못했다'는 경주사람들의 말처럼 남산은 꼭 올라봐야 할 산이다. 그저 주마간산으로 둘러보는 경주관광과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다.
남산은 산전체 둘레가 24km에 불과한 자그마한 산이다. 작지만 큰산이 남산이다. 이 자그마한 산에 무려 43개의 능선과 골짜기가 있다. 그냥 능선과 골짜기가 아니다. 147곳의 절터와 118채의 석불과 마애불, 96기의 석탑과 폐탑 등 총 672개의 유적 유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산전체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남산은 순례코스만 해도 70여곳. 제대로 돌아보려면 두달도 넘게 걸린다. 모퉁이를 돌면 부처를 만나고 한굽이를 넘으면 석불을 대하는 남산은 산 자체가 불국토다. 손쉽게 가장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삼릉골 코스로 오른다.
삼릉에 가까워지자 아침 안개에 자욱한 솔숲이 나타난다. 초입부터 감탄사가 나온다. 소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했던가? 삼릉 주위에는 제대로 서 있는 소나무가 없다.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은 지 하나같이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들린 나무들이다. 묘하게도 이리저리 굽은 나무들이 연출하는 장면이 아침 안개와 어우러지면서 너무나 아름답다. 솔숲 중간 중간에는 한창 절정인 분홍 진달래가 잿빛 소나무 줄기와 멋진 색채대비를 이루고 샛노란 산수유는 안개속에서 어스름한 색조를 띠고 있다.
10여분을 솔향에 취해 산을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는 금오산, 왼쪽으로는 상선암가는 길이다. 상선암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길이다. 10여분더 오르니 왼편에 목없는 부처가 나타난다. 석조여래좌상이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화강암 부처다. 없어진 목부위에는 지나가는 참배객이 얹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돌맹이가 하나 올려져 있다. 가사만 선각으로 새겨져 있고 손도 없는 모습이다. 자연 암반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계곡을 올라오는 대중을 굽어보고 있는 형국이다.
왼편 10여미터 위쪽에는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얼굴부위만 제대로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관음보살에는 돌이끼가 가득하다. 계곡을 계속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선각육존불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상선암가는 길이다. 길은 어차피 통하는 법. 육존불로 향한다.
약간의 경사로를 오르자 바위를 향해 열심히 절하고 있는 신도가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바위에 여섯분의 부처가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마치 바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부처를 향해 오른쪽은 석가여래로 현세의 부처, 왼쪽은 아미타여래로 극락세계의 부처다. 한 공간에 이승과 저승이 공존한다.
상선암으로 백여m 더 오르니 제법 경사가 심한 언덕이 나타난다. 검은 소나무 가지 밑에 핀 진달래가 아침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자연이 빚는 시간의 예술이다.
석조여래좌상을 만난다. 어째 좀 못생긴 부처인가 싶었는데 얼굴은 망가져 눈과 이마부분만 남고, 나머지는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바로 뒤편에 자그마한 석굴이 있다. 누군가 기도도량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상선함에서 목을 축이고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만난다.
남산에서 발견된 가장 큰 좌불이다. 마치 바위속에서 부처가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내친김에 정상쪽으로 더 발품을 팔면 상사바위가 나타난다. 상사바위에 걸터 않아 마애불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기가 막힌다. 저멀리 형산강이 굽이 흐르고 경주의 들판이 훤히 보이는 전방에 마애불이 거대한 바위끝에서 불국토를 설파하는 것 같다.
금오산 정상에 서니 남산 순환도로가 보인다. 이 작은 산에 순환도로라니....
약수골로 내려간다. 몇해전 난 산불의 잔해가 아직 그대로 있다. 줄기 밑부분이 검게 그을렸지만 더 푸른 가지를 달고 있는 소나무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약수골로 내려오는 길은 멋진 산죽길과 이름모를 야생화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
사진·글 :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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