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행이야기-'아이쿠, 러브호텔이었구나'

일본 구마모토 여행 때의 이야기다.

예전부터 일본식 전통 잠옷(?)을 입고 일본 전통식 여관(료칸)의 다다미방에서 폼나게 사진을 한번 찍고 싶었다.

그런 바람을 갖고 구마모토에 도착해 다다미 방을 찾아가려는데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마을은 너무나 조용했다.

한참 길을 걷다보니 왠지 자신감도 조금씩 없어지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 순간 걷던 길을 둘러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공동묘지였다.

스위스의 공동묘지는 이쁘게 꾸며져 무섭단 생각을 못했는데 이곳은 무척이나 으스스했다.

결국 친구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거리는걸 겨우 참고 좀 더 걸어야 찾을 수 있는 다다미방을 포기했다.

대신 주위에 보이는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쉬자며 의견 통일을 보았다.

둘러보니 왠 성(城) 모양의 이쁜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기뻐서 후다닥 로비로 달려갔다.

그런데 로비가 일반 여느 호텔과는 너무 달랐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프런트엔 전화기만 달랑 놓여 있었다.

또 로비 중앙엔 무척 큰 전광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각 방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과 침대의 모양이 모두 제각각 이었다.

그리고 방마다 가격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참 특이한 호텔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프런트에 놓여진 전화기를 들려고 하는데, 2층에서 왠 남녀가 내려오면서 우릴 봤다.

그런데 그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무슨 바보들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잠시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무서워지기도 했다.

프런트의 전화기를 들어 아무나 나오라고 불렀다.

그러자 40대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난 영어로 마구 떠들었고 그 아주머니는 일본어로 계속 말을 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우스운 대화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손으로 그리고 글로 쓰는 난리를 친 후에야 어렵사리 객실 키를 얻었다.

방에 들어가니 세면대가 침대 옆에 놓여져 있었다.

특이했다.

텔레비전을 켜니 눈이 튀어나올 만큼 온통 야한 프로그램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눈치챘다.

"앗, 러브호텔!". 얼굴이 화끈했다.

생각해보니 로비에서 일본인 커플이 우릴 이상하게 쳐다보고 나간 것도, 로비의 전광판도, 프런트에서 희한하다는 듯 우릴 쳐다보던 주인 아주머니의 눈빛도 모두 이해가 갔다.

무식이 죄였다.

친구와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이왕 온거 포르노나 실컷 보자'고 떠들며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고 말았다.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한국처녀들이 일본 러브호텔을 용감하게(?) 체험하고 나온 것이다.

조은정.여행칼럼니스트 http://blog.hanafos.com/eif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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