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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사 김수근 송덕비 "멀리 있어도 우리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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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는 어느 지방을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송덕비(頌德碑)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퇴계(退溪)선생은 가르침에서 감히 앞뒤의 공적을 포폄(褒貶.칭찬하는 일과 비방하는 일)치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종6년(1855년) 안동부사로 재임했던 김수근(金洙根)의 송덕비가 안동 땅이 아닌 멀리 문경땅 새재에 서 있어 안동시는 이 비(碑)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비문 전면에는 '고 안동부사김상국정문공수근추사타루비(故安東府使金相國正文公洙根追思墮淚碑)'라고 쓰여 있는데 이를 풀이하면 '돌아가신 옛 안동부사 김상국 정문공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며 세운 비'가 된다.

비문 내용을 보면, 공께서 옛날 우리를 감읍(感泣.감격하여 흐느낌)케 함은/따뜻한 새봄이 돌아옴과 같았네/빚 문서 태우시니/은혜가 천하에 무젖었네/밝은 햇빛 남쪽 누각에 임했으나/이처럼 다시 뵐 길 없어라. 며 적혀 있다.

또 뒷면에는 공이 안동부사로 부임했을때 백성들은 흉황(凶荒.흉작으로 농사가 결딴남)이 잇따라 고통을 겪었는데, 세금을 경감하고 민정에 폐단을 끼친 문서들은 모조리 불 태우는 등 공의 베푸신 은덕이 너무나 커 떠난 뒤에도 그리워하고 죽은뒤에도 잊지못한다는 애절함을 담고 있다.

안동시는 비문을 조사한 결과, 김상국 정문공이 임지였던 안동을 떠난 후 16년만에 세상을 뜨자 이듬해 안동의 38방(坊.마을) 백성들이 애모(愛慕)의 뜻을 담아 문경새재에 이 비를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는것.

안동에서는 당시 비석을 세울 수 없자 문경의 주흘산 남쪽 새재에 건립했는데 이는 조정에서 관직을 받아 남쪽 임지로 가는 군수, 목사가 이길을 지나면서 눈으로 보고, 장차 모범을 삼으라며 이곳에 건립했다는 것이다.

현재 송덕비는 문경새재 제1관문에서 100여m쯤 위쪽에 있는데 높이는 143cm 폭 55cm 크기다.

김휘동 안동시장은"이번 송덕비 발견은 매우 뜻깊고, 안동의 자랑으로 재조명해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표상(表象)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안동.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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