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게 선진국은 경제발전의 모델이자 교과서였다.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의 '선진국 콤플렉스'는 그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형태로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경제 위기가 우리의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일어났다는 인식이 곳곳에서 확산된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라 할 수 있는 선진국의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노골화됐다.
정말로 선진국은 경제발전을 꾀하는 후진국들에게 흠결없는 '숭배의 대상'일까. '사다리 걷어차기'를 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지금까지의 시각과는 다른 차원에서 선진국을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선진국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그리고 다른 후진국들의 입장에서도) 지금 선진국들이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우리에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단계에서는 어떤 정책과 제도를 썼는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후진국 및 개발도상국을 위한 선진국의 경제 처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데 있다.
저자는 보호무역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한 선진국들이 정작 제3세계 국가에 대해서는 자유 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하는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들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는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이제 와서 일방적인 세계화를 처방하는 선진국의 태도는 자신이 밟고 올라왔던 '사다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모습과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나아가 장 교수는 역사적 사실과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이용해 무역 및 투자 자유화 논리에 숨은 선진국의 이기주의적 의도를 파헤쳤다.
그 대표적 예로 한 때 완전한 자유 무역을 시행했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영국을 예로 들었다.
13, 14세기 영국 정부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력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폈다.
영국은 200년 넘게 보호 무역에 기반한 '수입 대체'와 '수출 촉진' 정책을 추진,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19세기 경제 최강국의 자리에 오르자 오히려 자유 무역의 장점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곡물법 폐지 등 일련의 조치를 장 교수는 "농업 상품 및 원자재 시장을 확장함으로써 유럽 대륙의 산업화를 '저지'하려는 자유 무역 제국주의적 행위"라고 평가한다.
'근대 보호주의의 모국이자 철옹성'으로 불렸던 미국도 역시 선진국 대열에 오르자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유 무역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들 나라는 보호무역에 매달리는 '도둑'에서 자유무역을 선전하는 '파수꾼'으로 변신한 셈이다.
이 책으로 유럽의 진보적 정치경제학회에서 제정한 뮈르달상을 수상한 저자는 선진국들의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찬사가 자칫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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