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효도

멀리 장사하러 간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소년 정관일은 그 편지를 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편지에는 평안하다 씌어 있는데 왜 우느냐'고 하자 '글자의 획이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아버지께서 병이 드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과연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객지에서 병을 얻어 고생이 많았다.

그는 자라면서 경서와 의술에 통달, 약을 팔아 부모를 봉양했으나 서른에 요절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의 두 아들로 마음을 위로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때 아들과 친구와 스승을 잃었다고 통곡했다.

이는 조선조의 실학자 정약용이 '다산문선'에 소개한 '효자 정관일' 이야기다.

▲조선조의 효(孝)에 대한 미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효에 대한 신비한 기사(奇事)들이 자주 일어나고, 관청은 그때마다 특혜를 내리곤 했다.

중엽 이후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 사상이 효도가 되면서 '가짜'가 빈번히 끼어 들기까지 하자 정약용은 효도 빙자를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태가 급격히 달라진 지금은 어떤가. 홀몸노인이 갈수록 늘고 있듯이 효 사상은 퇴조하고 있지 않은가.

▲올해 어버이날 효도상품 판매 실적이 지난해에 비해서도 뚝 떨어졌다고 한다.

전에는 내놓자마자 팔렸던 대부분의 효도관광 상품 예약률이 50%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카네이션조차 과거처럼 많이 팔리지 않은 모양이다.

가장 인기 있던 제주도 관광 패키지상품의 경우 어제까지 절반 정도 예약됐을 뿐이며, 효도를 겨냥한 유명 가수 공연과 디너상품도 지난해보다 30~40% 가량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현상은 오래 계속된 경기불황 탓이 가장 클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에게 얹혀 사는 청년 백수들을 떠올리면 더욱 안타깝다.

'취업이 가장 큰 선물이겠지만 여전히 앞이 안 보인다'거나 '고향의 부모님께 전화할 면목마저 없다'는 한탄은 일부 젊은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고 보면, '가정의 달' '어버이날'을 맞으면서도 효도를 강조하고, 노인을 돌보지 않는 세태를 안타까워할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10년이면 전체 인구의 10.7%가 될 전망이다.

곧 이어 노인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오게 된다.

그런 시대가 되면 효도라는 개념으로는 노인 문제를 풀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을 게다.

그렇다면 이제 노인들이 평생 노력한 대가를 밑천으로 자존심을 유지하며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적인 대책이 서둘러 마련될 때가 아닌가 한다.

다시 '어버이날'을 맞아 국가 차원에서는 노인 문제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땅에 떨어진 효도에 대해 깊이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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