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 침산1동 오봉산 폐가촌-언제 지붕 덮칠까 "조마조마"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 너도 나도 집을 내팽개치고 떠납니다.

이게 어디 사람 사는 동네입니까".

대구시 북구 침산1동 오봉산 자락에 있는 경상여고 옆의 한 동네. 비좁은 골목길을 돌아가면 50년대의 피난민촌보다도 더 못한 모습이 나타난다.

지붕이나 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집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나무 기둥만 남기고 모두 왕창 내려앉은 집들도 적지않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은 기울어지는 벽을 받치는 지지대의 행렬로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현재 이 동네는 '폐가촌'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85가구 중 이미 18가구가 집을 버리고 떠났고, 남은 주민들은 벽과 지붕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두려워하면서도 '갈곳이 없어' 머무르고 있다.

"언제 집이 무너져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매일 매일 하고 있다는 김갑수(81)씨.

김씨의 집은 방 5개 중 4개와 부엌의 천장이 폭삭 내려앉고 벽이 무너진 상태다.

모두 월세를 놓았던 방인데 세입자들이 2, 3년 전에 모두 나가버린 후 발길이 끊어졌다.

그나마 하나 남은 방에서 노부부가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폐가는 사정이 더욱 심각해 집이 무너진 자리에 잡초가 무성히 자랐고 버려진 가재도구 등이 뒹굴고 있다.

주민 최동규(64)씨는 "동네가 낮에도 음산해 혼자 다니기가 무섭다"면서 "동네에 불이 나면 골목이 좁아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이곳이 '폐가촌'으로 전락하는 것은 관할 북구청의 무관심에다 현실과 동떨어진 도시계획법 때문.

동네 바로 앞에 15층 짜리 아파트가 있고 길 건너편은 준공업지역이어서 고층건물이 들어서지만 이곳은 1종 주거지역으로 지정돼 4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 재개발이 불가능하다.

또 증.개축을 하려 해도 골목이 너무 좁아 건축 장비와 자재가 들어올 수 없다.

이때문에 지난해 12월 북구청이 동네를 통과하는 소방도로 시설 결정을 뒤늦게나마 내렸지만 이 또한 언제 공사가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주민 배영태(70)씨는 "하다못해 소방도로라도 하나 내주면 집을 고치고 화재 걱정이라도 덜 텐데…"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북구청 건설과 담당자는 "소방도로 결정이 났지만 아직 관내에 미개설된 도로가 460여개나 돼 이 동네를 먼저 하기가 어렵다"며 "상황이 열악한 만큼 소방도로 건설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한편 대구에서는 현재 서구 14곳, 남구 6곳 등 모두 44곳이 주거환경 개선사업 대상지역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아파트로 개발되는 7곳을 뺀 나머지 지역은 자체 재개발 방식이어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자체 재개발 지역은 시와 구.군이 소방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설치해주고 주민들이 주택 개량사업을 하도록 되어있다"며 "매년 몇개 지역을 추가 지정하고 있지만 지역 규모가 적거나 예산 부족 때문에 사업 진척이 느린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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