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남북의 문화동질성 회복 방안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시작하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

흔히들 즈믄 해, 2000년대는 '문화의 세기', '지식경쟁의 시대'라고들 한다.

이에 대비하여 통일문제에 관한한 새로운 문화적 묘책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력사관에 의한 역사의식 속에 멀리 고구려의 물량적 팽창에 대한 갈망과 자긍심을 은근히 부추겨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문화력사관에 의한 지적 잠세력으로 제2의 영토확장이라는 지식전쟁의 시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통일문제연구는 기본적으로 영토의 확장이나 제도적으로 정치력의 통합을 희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제도통합'이라는 대명제 아래 정치, 경제적 협상이라는 실천과제의 실현에만 지나치게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제 외적 '제도통합'을 내조하면서 사회 내적 '민족통합'을 가능케 하는 문화동질성 회복을 위한 문화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의 통일정책이 민간주도의 문화행사로 선회하는 징후가 보여 다행이다.

그러한 미술정책의 일환으로 연전에 아태평위의 초청을 받은 한국의 '원로화가 방북기행단'을 파견하여 북한미술의 실상을 파악하게 함으로써 통일에 대비한 문화정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

또 지금 전시 중에 있는 민화협 주최, 조선중앙역사박물관 특별후원의 '2004 남북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등이 있다.

이처럼 민간주도의 미술교류활동이 통일을 앞당기는데 매우 바람직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치권력의 속성상 통일문제를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해온 기존의 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터에 문화의 상대적 독자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문화동질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인 문화개념상의 복합성과 추상성 때문에 연구의 초점이 다양화해짐으로써 이들 상호간의 횡적인 연계성을 상실하기 쉽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문화 상호간의 통일성을 구축할 수 있는 연구과제의 철학적 중심축을 형성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일 것이다.

근래에 문화적 접근을 통한 통일방안의 모색이 활발히 진행되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기존의 통일관련 문화분야의 연구는 주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북한 문화의 변질, 내지는 이질화를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었다.

그럼으로써 서로가 상대적 폄하(貶下)를 위한 구실을 찾는데 급급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남북의 미술분야 교류는 장기적이고도 학술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만 비로서 가능하게 된다.

진정한 문화동질성의 회복은 동질성을 찾기에 앞서 본시 존재하는 지역적 이질성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관용의 미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양극화 현상 이후, 북한미술의 이질화 경향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조화의 묘를 찾아서 보다 나은 민족문화를 창출하려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림이 본업인 화가다.

북한미술의 전문가도 아니고 더구나 통일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본 바도 없다.

다만 국민된 도리에서 누구나 처럼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갈망하며 화가로서 생각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견이 있을 뿐이다.

나는 오랜 세월을 민족미술의 '자생성' 확보라는 화두(話頭)를 놓고 공부해왔으며 또, 창작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 보려고 노력해왔다.

창작과 교육의 현장에서 40여 년 동안 몸담아오면서 고구려벽화 기법을 섭렵(涉獵)하여 현대 벽화양식으로 계승 발전시켜보려고 연구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남북 작가 전시회를 통해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 작가들과 도쿄 그리고 평양에서 여러 차례 회동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이해하고 터득하게 되었다.

북한 전역에 산재한 기념비적인 조각상을 비롯한 초대형벽화 작품들, 그리고 조선중앙역사박물관과 미술관 답사를 통해 북한의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의 현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양교외의 강서 대묘와 중묘의 벽화, 그리고 408년에 그려진 덕흥리 고분벽화를 직접 보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남북 미술의 동질성 회복에 대한 체험적 제안이 나오게 된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통일을 대비한 남북의 문화동질성 회복을 위한 미술정책은 관용과 조화의 묘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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