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국 골프잡지에서 골퍼들의 워스트스코어(worst score)를 공모했더니 한 라운드에서 238타를 친 골퍼가 우승을 했다.
그는 첫 라운드에서 120타 이내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라운드의 경우 호수 한가운데 동그라니 떠있는 파3홀에서 33개의 공을 물에 빠뜨렸다고 했다.
34개째의 공은 67타가 되니까 두 번의 퍼팅으로 마무리를 해서 69타를 기록했고, 또 항아리를 묻어 놓은 것 같은 벙커에 빠진 공을 꺼내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공은 날아 들어가고 사람은 계단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공도 한칸한칸 계단으로 올라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며칠 전 친구들과 라운딩을 했는데 내가 비슷한 꼴을 당했다.
여성티를 페어웨이 앞쪽으로 당겨 놓아 여성골퍼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 듯 보이는 골프장이었다.
나처럼 드라이버 샷의 거리가 평균 이하인 여성골퍼도 파4홀에 파온이 가능할 만큼 페어웨이가 짧았다.
그린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벙커와 그린의 앞쪽에 꽂힌 깃대가 압박을 주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코스를 공략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치는 공마다 벙커의 아가리 속으로 흘러들었다.
벙커는 너무 깊어 속에서는 아무리 고개를 위로 치켜 들어도 보이는 것은 동그란 하늘뿐이었다.
기록표에는 벙커에 빠진 홀마다 더블 파를 기록했다고 적었지만 실제 기록은 달랐다.
정식 경기였거나 2시간 10분 안에 9홀을 끝내야하는 규정에 묶이지 않는 골프장이었다면, 그래서 해가 지고 달이 뜨더라도 벙커를 탈출할 때까지 열번이건 백번이건 샌드웨지를 휘둘러볼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골프채를 휘두른 횟수를 손가락발가락을 다 꼽아가며 셈했더라면 내 성적이 얼마나 되었을지가 실로 궁금하다.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타수를 올바르게 셀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었다.
골프장마다 골퍼로 북적대고, 뒷조에 밀려서 쫓기듯이 라운딩을 해야 하는 우리 골프장에서는 한 홀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자신의 진정한 워스트스코어를 알 수가 없다.
라운드 소요시간 제약이나 오비(OB) 말뚝도 없고 항아리 벙커가 수십 개 포진해있는 골프장. 홀마다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호수가 있는 골프장에서 아무리 매를 맞아도 제자리로 굴러와 오뚝이처럼 앉아있는 공을 날리기 위해 하루종일 벙커 샷만 하며 호수에 떠있는 그린에 공을 얹어 보려고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골프채를 휘둘러대더라도 내 진정한 '워스트스코어'에 도전해 보고 싶다.
김영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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