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성적에 부모 조급증 내면 자녀혼란

현재 영어학습의 방식은 큰 틀에서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이뤄지는 회화식 영어학습과 초등 고학년 혹은 중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하는 문법 위주 영어학습이다.

물론 회화식 학습이라고 앵무새처럼 말만 되풀이하는 학습을 뜻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문법 학습이라고 회화를 외면한 채 문법에만 매달리는 학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학부모들이 인식하는 '회화영어'는 알파벳, 파닉스, 스토리텔링 등을 거쳐 회화학습 위주의 코스북(course book)을 영어학습의 주 메뉴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문법영어'는 듣기, 독해, 문법 등의 내용이 주로 등장하는 시험영어를 철저하게 대비하는 형태를 가리킨다.

많은 학부모들이 영어학습 초창기에는 영어를 익혀 활용할 수 있는 형태의 회화영어를 선호하지만 고학년에 이를수록 학교 성적이라는 현실적 요구에 부합하는 문법영어 형태로 전환한다.

영어학습을 한 기간에 따라, 실력에 따라 학습 내용과 패턴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적정한 실력이 쌓이기도 전에 패턴을 바꾼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초창기에 어렵사리 쌓았던 내용이 고학년 학습과 연계되지 못해 헛되이 날아가기 쉽다.

학부모들이 학습 패턴의 전환을 고민하면서도 실제 결과를 놓고 허탈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처음엔 소신 있게 자녀의 영어학습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 놓았다가도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란 힘든 게 현실이다.

이럴 거면 뭣하러 회화학습에 공을 들였나 후회하는 학부모도 볼 수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주위의 선배(?) 학부모들이 겪는 실정을 보고 일찌감치 문법 위주의 영어학습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령과 사고력에 맞지 않는 학습 방법은 오히려 영어를 기피하고 거부감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자녀가 인내심을 갖고 뚝심 있게 공부를 해나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영어 실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권에서 유학하다 돌아온 아이들의 예를 살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학에서 돌아온 아이의 경우 또래 아이들에 비해 경쟁력 있는 영어 실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시험 영어에서도 좋은 점수를 유지한다.

왜 그럴까. 아무리 영어를 못 해도 무조건 유학만 갔다오면 만사형통이 되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유학하다 돌아온 아이들은 영어를 다루고 활용하는 기술이 국내에서 공부한 아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기술과 감각을 바탕으로 영어학습이 이뤄질 경우 내용이 어떻든, 형태가 어떻든 학습 효율은 엄청나다.

다시 말해 회화 실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문법 학습이든 시험영어든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문법에 능하고 어휘를 많이 암기했다고 해도 막상 영어를 다루고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영어학습의 효율은 크게 떨어진다.

결국 문법 영어, 시험영어에 직면하기 전에 영어 실력을 유학갔다온 아이들 정도로 자유롭게 다루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단은 부모가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하루 24시간을 완전히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기가 불가능하고, 회화영어에 매달릴 수 있는 기간이 한정돼 있다고 해도 동기만 제대로 주어지면 스펀지처럼 외국어를 빨아들이는 게 아이들이다.

최근 들어 크게 수준이 높아진 영어학습 교재와 보조수단, 미디어 등을 잘만 활용하면 국내에서도 유학파 못지 않은 실력을 충분히 쌓을 수 있다.

부모들이 조급해할수록, 주위의 얘기에 휩쓸릴수록 자녀의 영어 실력을 쌓기는 어렵다.

공부의 패턴을 바꾸거나 학원, 교재 등을 새롭게 하는 것도 나름의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는 될 수 있지만 자녀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 실제 공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확신만 있으면 어지간한 어려움은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주위 환경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도움말:김도경(세인트폴 어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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