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내에서 포스코와 오천읍을 지나 남쪽으로 승용차로 20여분 정도 달리면 유서깊은 반촌마을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소재지가 보인다.
이곳에서 동쪽(구룡포 방향)으로 10여분 더 가다보면 해안가에 장기면 모포리(牟浦里)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난다.
옛부터 '장기 미역'하면 이곳 '모포 미역'을 일컫는다.
이 모포리 뒷산인 뇌성산(磊城山, 해발 212m)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그야말로 일품.
하지만 이 뇌성산에는 지금 안타깝게도 곧 사라져버릴 위기에 놓여 있는 중요한 사적지 한 곳이 무성한 잡초속에 묻혀 있다.
바로 '뇌성산 뇌록지(磊碌趾)'로 마을에서 보면 왼쪽 산허리 움푹 팬 곳이다.
'뇌성산 뇌록'은 조선조때 국가 중요 건물에 단청(丹靑)을 할 때 처음으로 가칠(假漆)을 하는 푸른색의 바탕칠 재료로 사용하던 돌이다.
이 돌은 어린 쑥이 올라올 때의 색보다 조금 더 진한 청녹색을 띤다.
*역사서 "국내유일 생산"
조선후기 여러 문헌에서 '뇌성산 뇌록'을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우리나라 단청은 중국의 단청과 달리 고유한 색조를 띤다.
단청을 할 때 가칠을 하는 녹색의 바탕칠 재료가 뇌록이다.
그 뇌록은 경상도 장기현에서 유일하게 생산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 이 '뇌록'을 조선조 영건도감(營建都監, 조선조때 나라에서 큰 건물을 지을 때 기록하던 책자)등에는 '磊碌'으로,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磊綠'이라 각각 적고 있다.
둘다 음은 '뇌록', 뜻은 '푸른 색깔을 띤 돌'이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무엇때문인지 몰라도 이 '뇌록'을 '매새'라고 부른다).
순조 당시의 영건도감에도 창덕궁 인정전, 경희궁 내전, 창경궁 내전 등을 지을 때 경상도 장기현의 뇌록을 사용해 단청의 가칠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같이 '뇌성산 뇌록'은 조선조때 까지만해도 국가의 중요건물을 비롯해 각종 건축물을 지을 때 멋을 내는 기초 재료로서 뿐만 아니라 부식 및 화재 방지를 위해 사용된 매우 귀중한 자연 광물인 것이다.
*가루내 애벌채색 사용
하지만 언제 시작해 언제까지 이 뇌록이 채굴되었고, 왜 중단되었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안타깝다.
더욱 가슴아픈 것은 이 귀중한 사적지가 현재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3월, 향토사가인 금낙두(전 장기중 교장)씨가 이 뇌록터를 보존하기 위해 이곳과 관련된 각종 옛 문헌을 조사한 후 포항시를 통해 경북도에 국가지정 문화재(사적)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금씨는 경기대 고건축학과 김동욱교수(문화재 전문위원)와 함께 현장을 답사, 시료를 채취해 조사한 결과 보고서까지 첨부했다.
김 교수의 시료 조사보고서에는 "뇌록 가루에다 아교를 가미해 칠을 해 본 결과 우리 조상들이 고건축물에 칠했던 가칠과 거의 흡사한 색깔을 얻을 수 있었다"며 "현장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 국내 유일의 단청 관련 유적지로 보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항시와 경북도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태도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들의 안목부족 등으로 사적신청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는 실정이다.
금씨는 "해방직후만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뇌록을 캐내와 물에 녹여 주먹만하게 만들어 놓으면 이를 사가지고 가는 장사꾼이 있었다"며 "국내 유일의 고건축 단청재료 공급처였던 만큼 뇌록에 대한 과학적인 고증과 함께 당국의 보존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사적신청 8년 무소식
한편 이 뇌록을 파내던 굴을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매새 구디이(굴)' '쉰 구디이'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쉰 구디이'라 부르는 것은 과거 이곳에서 뇌록을 캐내다 굴이 무너져 50명이 죽었다고 해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 이시홍(48)씨는 "굴의 깊이가 하도 깊어 과거 명주실타래 서너개를 풀어 넣어도 닿지않았다"며 "하지만 갈수록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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