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판덱스'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20세기가 종말을 향해 달려가던 1999년 말, 미국 포천지는 "'이것'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금세기 최고 상품을 발표했다. 당시 의류분야 1위를 차지한 스판덱스 신화는 21세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스판덱스 없이는 못살아
한때 섬유 반도체로 불렸던 스판덱스는 한번 당기면 5~8배까지 늘어나면서도 99% 이상의 탄성회복력을 갖춰 일반 의류 원단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최상의 착용감을 선사한다.
초기엔 코르셋, 거들, 속옷 등의 이너웨어로 국한됐지만 스포츠웨어, 남녀정장 등으로 차츰 쓰임새가 커졌고 현재는 신발, 모자, 장갑, 붕대 등의 비의류용 분야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최근 들어 수요가 급증하는 대표적 스판덱스 시장은 다이어트 웨어와 아기 기저귀 분야. 몸짱 신드롬에 힘입어 인기를 끌고 있는 다이어트 웨어는 폴리에스테르 또는 나일론으로 만든 흡한속건소재(본지 7일자 11면 보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지만 고신축소재 스판덱스를 적절히 섞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몸을 꽉 죄어 줘 체형을 변화시키면서도 인체의 움직임에 맞춰 자유롭게 늘어날 수 있는 소재는 오직 스판덱스뿐이기 때문이다. 기저귀에 쓰이는 스판덱스는 벨트 등 몸과 맞닿는 부분에 사용돼 기저귀와 아기 몸을 밀착시킨다.
잘 흘러내리지 않고 분비물이 새지 않는 고급 기저귀에는 스판덱스가 필수. 기저귀용 스판덱스는 780~840데니어(1데니어=1g으로 9000m까지 늘릴 수 있는 실의 굵기)수준으로 이처럼 굵은 실을 만드는 데에는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스판덱스 제조는 시련의 길
스판덱스는 품질과 기능에 따라 1kg당 7달러에서 30달러 이상을 호가한다. 파운드(0.42kg) 당 75센트 내외인 일반 의류용 원사보다 수배에서 수십배나 비싼 셈이다.
스판덱스가 비싼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스판덱스 취재차 찾아간 효성 구미공장과 코오롱 구미, 경산 공장은 스판덱스 생산 구역 전체가 특급 보안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스판덱스 기밀을 지키기 위해 같은 회사 직원이라도 공장 출입을 금지시킨다.
국내 스판덱스 제조기술의 역사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스판덱스를 개발한 미국 듀폰과 일본 도레이는 특허 등록을 통해 원천기술 누출을 차단했다.
새로운 기술개발을 향한 수백번의 실패와 끝없는 도전. 스판덱스 제조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었다. 1958년 듀폰이 세계 최초로 스판덱스(브랜드명 라이크라) 생산에 성공한 이후 효성, 코오롱 등이 국산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하기까지는 무려 4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야 했다.
현장에서 만난 스판덱스 관계자들에 따르면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등 일반 화학섬유의 제조원리는 테레프탈산, 에틸렌글리콜, 카프로락탐 등의 석유원료를 쌀알만한 고체 상태로 만드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 고체를 녹여 구금 또는 노즐이라 불리는 구멍으로 밀어 넣고 잡아 당겨 길고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스판덱스 경우 고체상태에서 실을 뽑아내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 똑같은 석유원료라 하더라도 스판덱스 기초 재료인 PTMEG(폴리테트라메티렌에테르글리콜)와 MDI(디페닐메탄-4,4-디이소시아네이트)가 반응해 고체화하면 '겔레이션(gelation, 젤)'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그물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그물 구조에서는 제아무리 열을 가해도 절대 녹지 않아 실 모양으로 뽑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효성 구미공장 안준모 스판덱스 품질팀장은 "고체 상태로 결합하기 전 연속중합 방식으로 실을 뽑아내는게 스판덱스 제조기술의 핵심"이라며 "이 특별한 중합 기술은 소수 관계자가 아니면 단 한마디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스판덱스 생산의 두 번째 난관은 실의 신장력을 높이는 것. 스판덱스 소재는 보통 5~8배 정도 늘어나야 하지만 일반적인 제조 공정으로는 2배 정도에서 바로 끊겨 버린다.
끊김 현상을 방지하려면 신장력을 좌우하는 분자구조(소프트 세그먼트)와 실의 강도를 좌우하는 분자구조(하드 세그먼트)의 적절한 조합이 필수다. 특수 첨가제를 통해 신장력을 높여주는 공정은 일명 '쇄연장반응(chain extention, 체인 익스텐션)'으로 불리는데 그 제조 방법은 철저한 베일에 가려 있다.
코오롱 구미공장 노경환 스판덱스 생산차장은 "아무나 스판덱스를 제조할 수 있었다면 아무도 스판덱스 생산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스판덱스 제조 업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중합 과정이 워낙 난해해 국가별, 기업별 품질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알림= '신화를 창조한다-섬유, 첨단현장을 찾아서'에 대한 섬유인, 지역시민, 섬유학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인터넷 매일신문(www.imaeil.com)에 떠있는 '신화를 창조한다. 첨단 섬유의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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