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베란다 화분에 씨앗을 심었던 분꽃은 잘 자라지 못했다.
햇빛이 부족한 데다 달콤한 빗물을 받아먹지 못하고, 지나는 바람과도 놀지 못한 탓에 작은 키에 잎도 빈약했다.
그래도 행여 꽃을 피울까 싶어 미적거리다 가을이 되도록 그대로인 모습에 미안하여 아파트 화단에 옮겨 심었다.
그러나 시기를 놓친 탓에 한 송이의 꽃도 피우지는 못했다.
얼마전, 까맣게 잊었던 그 분꽃이 그 자리에서 떡잎을 내밀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지난 가을 색깔이 고와 받아두었던 직지사의 분꽃씨 몇 개를 그 근처에 심어두곤 오가는 길에 살펴보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였다.
그런데 잘 자라던 그 분꽃포기가 지난 주말 홀연히 사라졌다.
누군가 뽑아간 모양이었다.
아깝고 속상해서 가슴 한구석이 휑해졌다.
"베란다에 심어봤자 잘 자라지도 못하는데…". 지나던 아파트 관리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뭘 심어두면 몰래 뽑아가 버리는 사람들이 적잖심더. 내참, 이상한 욕심도 다있제".
상심한 마음으로 동네 뒷산에 오르니 찔레가 만발해 있다.
가까이 코를 들이밀어야만 은은한 청향(淸香)을 맡을 수 있다.
꾸미지 않은 청순한 모습이 낡은 앨범 속 우리네 엄마들의 젊은 시절 모습같기도 하고, 멀리 시집간 옛시절의 누이 얼굴 같기도 하다.
머리 위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보리밭이 누릿누릿 익어갈 때 아닌가. 지척에서 들으니 의외로 목청이 맑다.
화답하듯 멀리서 뻐꾹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봄산에선 산새들의 오케스트라가 열리고 있었다.
가끔씩 산꿩이 심심한 듯 꺽! 꺽! 목 쉰 소리로 정적을 깨뜨리는가 하면, 까르르르~ 까불이처럼 노래하는 새도 있고, 외마디 비명처럼 후다닥 한마디 괴성을 지르는 소리도 있고….
가만 들어보면 혼자서 계속 지절거리는 녀석은 없다.
제 순서에 맞춰 연주하는 악사처럼 어쩌다 한 번씩 소리를 낼뿐. 아마도 우리 사람들처럼 "내 소리 들어주"라며 시도때도 없이 우짖는다면 산의 데시벨(db)은 엄청 높아질 터이지만 묘하게도 새들은 그런 지혜를 생래적으로 잘 터득해 있는 모양이다.
산새들이 사는 모습은 욕심많은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이해인 시 '가난한 새의 기도'중).
새 뿐만 아니라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키는 바위,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아도 열심히 새 나이테를 만들고 있는 나무들... 잃어버린 분꽃 때문에 잠시 상처입은 마음은 어느덧 평상심으로 돌아와 있었다.
전경옥 편집 부국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