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부부-(20.에필로그)'당당한 삶의 선택'기대반 우려반

'부부의 날을 아십니까'

올해부터 5월 21일이 법정 기념일인 '부부의 날'로 지정되었다.

부부의 날은 1995년 경남 창원에서 빈민층 청소년을 상대로 선도활동을 벌여온 권재도 목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권 목사는 그해 어린이날을 맞은 한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는 것을 보고 부부의 날 운동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새삼스럽게 '부부의 날'까지 제정된 것은 결혼.출산율 하락, 이혼율의 증가 등으로 기존 '부부'의 개념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신(新) 부부'와 '구(舊) 부부'는 어떻게 다를까.

가족 개념의 '헤쳐 모여'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 가족 내에서부터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은 심상치 않다.

'가족'이라는 제도는 똑같지만 30년 전 부부의 모습과 지금 부부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재혼남과 초혼녀의 결혼 비율보다 초혼남과 재혼녀의 결합이 더 높고 한부모 가정도 늘고 있다.

뒷간과 함께 멀수록 좋다던 처가는 이제 심리적으로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가족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던 자녀 역시 '내 삶을 좀 더 즐기기 위해'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출산율도 급격히 감소해 1970년 4, 5명이던 자녀 수가 2001년엔 1.3명으로 줄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인재가 국력'이던 우리 사회의 가파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출산율이 2명 이하로 떨어지는데 선진국들은 100년 안팎이 걸렸지만 한국은 3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가정의 변화 속도가 급격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 가운데는 사회적 문제의 충격흡수 역할을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교육 문제가 개인에게 떠맡겨지면서 가족의 해체 아닌 해체를 겪고 있는 외기러기 아빠나 한부모 가정 등은 가정의 변화 이면에 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신(新) 부부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개인이 가족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정과 가족이란 이름 속에 자신을 묻어야 했던 수많은 구(舊) 부부들에겐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부부가 각자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고 욕망을 드러내는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결혼이란 제도가 갖는 결속력은 매우 약해져, 이제 결혼을 한 남녀의 외도 소문은 그다지 새로운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각종 대중매체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소재인 젊은이들의 동거도 대학가에선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시스템은 그대로인 채 내용만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족과 부부 모습의 변화는 출산율의 변화 만큼이나 급속해, 일부는 이런 변화 속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프랑스에서 10여년간 유학한 한 대학강사는 "프랑스 젊은이들은 주관이 뚜렷하고 책임감도 강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충분히 책임질 수 있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정신은 더욱 나약해진 반면 육체적 해방만을 외치고 있어 문제"라고 걱정했다.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우려와 걱정도 있지만 희망을 던져주는 신부부들도 적지 않다.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 '바깥양반, 집사람'이란 구(舊) 부부의 도식적 모습을 벗고 한층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외국인들과의 결혼이나 연상연하 커플이 늘어나고 가족 내 유쾌한 역할바꿈이 일어나, 아내를 외조하는 남편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또 결혼보다 일을 선택하는 선남선녀들의 모습이 '비정상적인 삶'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삶'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부부의 모습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여러 가지 색깔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신(新) 부부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이 밝고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인지, 어둡고 비뚤어진 그림이 될 것인지는 사회와 부부 각자의 몫으로 남았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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