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짝퉁 공화국

최근 전통차(傳統茶)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기(茶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자연히 다기를 만드는 도공들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다기는 생활자기로 분류된다.

그러나 생활자기라고 예술성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생활자기를 만드는 도공들 중에도 분명히 명인이 있고 그들이 만드는 다기들 중에도 분명히 명품이 있다.

문제는 짝퉁이다.

짝퉁은 명품을 가장한 모조품을 일컫는 속어다.

대한민국은 도자기를 필두로 가장 뛰어난 전통예술과 장인정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현대에 이르러서는 국민들 대다수가 명인이나 명품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짝퉁공화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명품이 짝퉁 취급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짝퉁이 명품 대접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모든 짝퉁은 간사한 기술을 바탕으로 조작되지만 모든 명품은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된다.

전통차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연차(蓮茶)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연차는 단아하게 피어 있는 연꽃을 선정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 다음, 연못 속에 들어가 꽃잎이 닫히기 시작하는 오후 3시 경부터 꽃잎이 닫히는 오후 6시 경까지 녹차를 투입해서 갈무리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마시던 전통차로, 조선시대에 맥이 끊어졌는데 현대에 이르러 뜻있는 애호가들에 의해 복원되었고, 초기에는 평생에 한번 인연이 닿을까 말까 한 차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다인(茶人)들에게 전파되어 최근에는 '연차를 못 마셔 본 사람은 다인이 아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 선호도가 높아졌다.

연차를 운치 있게 마시려면 연지(蓮池)라는 다구(茶具)가 있어야 한다.

연지는 곤지암에 가마를 가지고 있는 도예가 신현철(申鉉哲)이 처음 창작해서 특허를 얻어낸 작품으로, 아마도 대한민국 현대 도예사(陶藝史)에서는 짝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다구로 기록될 것이다.

친분이 돈독한 도공들은 물론 생면부지의 도공들까지 신현철의 연지를 그대로 베껴 먹었고 다시는 재범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받아낸 각서도 열 장이 넘는다.

하지만 각서를 쓰는 쪽은 그래도 양반이다.

적반하장격으로 신현철이 자신의 작품을 베껴 먹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는 도공들까지 있으니 대한민국의 전통예술과 장인정신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던 사람들은 실로 통탄을 금치 못할 노릇이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음미의 문화다.

어떤 문화든지 진지하게 음미하지 않으면 깊이 내재하고 있는 운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수분을 섭취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운치를 음미하면서 정신적 수양을 도모하는 행위다.

그래서 차를 재배할 때도 차를 마실 때도 마음이 진솔하고 정갈해야 한다.

다기도 마찬가지다.

빚을 때도 마음이 진솔하고 정갈해야 하며 쓸 때도 마음이 진솔하고 정갈해야 한다.

그러나 짝퉁은 썩은 양심으로 빚어낸 물건이다.

썩은 양심으로 빚어낸 물건에는 음미할 만한 운치가 없다.

단지 역겨움을 느끼게 만드는 탐욕만 내재되어 있을 뿐이다.

비록 턱없이 모자라는 재능으로 빚었어도 진솔하고 정갈한 마음이 들어 있으면 반드시 운치가 내재하는 법. 진정한 다인이라면 능히 그 아름다움을 차와 함께 마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도예의 세계에서만 짝퉁이 범람하랴. 이제 짝퉁은 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쳐서 왕성한 번식력을 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공모전에서도 명품들을 제치고 짝퉁들이 버젓이 입상 대열에 오르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예술은 모방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일까. 사람들은 모방한 사람의 입장을 위무(慰撫)하거나 두둔할 때 자주 그 말을 사용한다.

특히 짝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 말을 일종의 면죄부로 생각하는 성향이 짙다.

그러나 예술은 창조다.

국어사전은 처음으로 만드는 것을 창조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대로 모방은 이미 있는 것을 본떠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적 관점에서 고찰하면 예술이 모방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은 예술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자 망언이다.

이외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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