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극기를 꽂으며'

"'태극기 펄럭이며' 봤어?". "아니, 근데 '태극기 흩날리며' 아냐?".

어릴 적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라는 동요를 하도 불러서 그런지 '태극기 휘날리며'가 자꾸 '태극기 펄럭이며'라고 '헛소리'를 하게 된다. 실제로 서울의 모 언론사 기자는 '태극기 흩날리며'로 썼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달 초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성인물'로 둔갑한 일이 있었다. 미국 영화전문 사이트 IMDB(www.imdb.com)가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르를 '성인물'을 뜻하는 'Adult'로 기재했다가 네티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부엌에서 장동건과 이은주가 1초 가량 살짝 키스하는 것이 전부인 이 영화가 왜 '성인물'로 둔갑된 것일까. 아무리 봐도 미스터리다. 누가 고의로 하지 않으면 성립 안 될 일. 그래서 네티즌들은 한국영화를 음해하려는 음모가 있는 듯이 극심한 반발심을 보였다.

IMDB는 세계적인 공신력을 갖고 있는 사이트다. 그런 사이트가 이런 얄팍한 수를 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무자의 착오와 실수에서 야기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면 실무자가 어떤 착오를 일으킨 것일까.

언뜻 떠오르는 영화가 '태극기를 꽂으며'(제작 클릭영화사)다.

이 영화는 16mm 비디오용 에로영화다. 태극기 모독과 외교관계 훼손 등의 이유로 5차례나 '등급보류 판정'을 받아 조금 시끄러웠다. 지난 4일 당초 제목인 '태극기를 꽂으며'를 '깃발을 꽂으며'로 바꾸고서야 겨우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물건으로 미국 죽이기'가 발상이다.

호스트바의 열혈 선수 극기. 잠입경찰의 급습으로 체포되고, 현장에서 사진기자 소연의 카메라에 자신의 물건이 고스란히 찍힌다. 갈데없어 소연의 집에 머물게 된 극기는 소연의 반미 시위에 호기심을 가진다.

극기는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반미시위현장'에 가게 되고, 거기서 미국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가지게 된다. 고심 끝에 결심한 것이 '미국여자만이라도 내 물건으로 지배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극기는 미 8군 사령관과 미국 영부인, 더구나 미국 부시로까지 이어지는 세계적인 섹스스캔들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IMDB의 실무자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태극기'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그래서 구글검색에 'Taegukgi'를 입력했다.

그러자 인터넷 검색결과 뜬 것이 '태극기 휘날리며'와 '태극기를 꽂으며'. 공교롭게 '태극기를 꽂으며'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슷한 시기에 화제를 모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검색 결과를 본 후 이어지는 '태극기를 꽂으며'를 보게 된다. "어! 사진이 뭐 이래, 성인용인데". 그래서 'Adult'를 입력하게 된 것은 아닐까.

'태극기를 꽂으며'가 일반에 공개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결국 미국 대통령 부인과의 섹스 스캔들을 표현한 신문지면, 주한 미군 사령관 부인과의 정사장면, 태극기 문양의 팬티, 흑인 병사의 강간 장면 등을 삭제하고서야 비디오로 출시될 수 있었다.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태극기를 꽂으며'는 언론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에로비디오로서는 남자주인공이 소파 개정 구호를 외친다거나, 미국 외교관 부인들을 성적 노예로 만든다는 줄거리가 '파격적'이기 때문이었다. 감독의 인터뷰가 나가고, 태극기를 휘두른 배우의 사진을 통해 '태극기 모독'에 대한 반향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의 가정을 해보자.

IMDB 실무자에게 한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것이다. 아직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친구는 야후 코리아나, 다음에서 '태극기'를 검색한다. 그랬더니 '태극기를 꽂으며'가 나왔다. 그래서 그에게 "이것 성인용 AV(Adult video) 던데"라고 했을 수도 있고... . 하도 어이없는 미스터리라, 어이없는 가정을 해보았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