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할로우 맨 (Hollow Man)'

내가 만일 투명인간이 된다면?

일단은 유쾌한 상상을 하게 된다. '출입금지' 구역이 없어지니, 금남 금녀의 공간이 상상 1순위다. 몰래 흠모하는 이의 일상을 쫓을 수도 있고, 그의 곁에 누워 같이 날숨과 들숨을 쉴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목욕탕이나 탈의실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훔쳐보기'가 고작이다. 변신의 고통을 감안하면 그 결실은 너무 작은 것이 아닐까?

B급 영화의 대가 로저 코먼의 'X-레이 맨'(Man with the X-Ray Eyes. 1963년). 어느 날 주인공 닥터 제임스(레이 밀랜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투시력이 생긴 것이다. 옷을 뚫고 사람들의 알몸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생긴다. 길거리를 다니며 늘씬한 여인들을 감상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투시력은 몸까지 투과하게 된다. 길거리에는 뼈만 앙상한사람들의 '해골 거리'가 된다.

곧이어 벽까지 투시하게 된다. 아파트에 누워 있다가 눈을 뜨고 놀라는 장면은 압권이다.

층층이 누워 있던 사람들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상상해보자. 층이 없어진다면? 같은 위치의 침실, 같은 위치의 거실, 그리고 같은 위치의 화장실... . 화장실에 앉아 층이 없이 위가 보인다면? 분명 나이트메어다.

폴 버호벤의 '할로우맨'의 공포도 그런 수준이다.

미국 정부는 최고의 과학자들을 구성해 '할로우맨 실험'(투명 인간 실험)에 대한 일급 비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실험용 고릴라를 투명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한 팀장 케인(케빈 베이컨)은 자신을 시험에 이용한다. 살과 뼈가 차례로 약물에 의해 타들어가고, 카인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험대 위에서 흔적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제부터 그는 '투명인간'으로 가공할 힘을 발휘하게 된다.

폴 버호벤이 누군가? '원초적 본능'이란 희대의 에로틱 무비를 만든 이가 아닌가. 그에게 투명인간의 망토를 준다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훔쳐보기'에 들어간다. 그는 옛 애인 린다(엘리자베스 슈)를 훔쳐보기 시작한다.

침대 곁 흐트러진 몸매를 훑어보고, 매튜와 섹스하는 장면도 목격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여자 동료도 엿본다.

이제 케인은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욕망과 과대망상을 분출하면서 위험한 인물이 되어간다. '카인과 아벨'의 카인처럼 태초의 첫 투명인간으로 인간과의 대결을 펼친다.

'할로우맨'은 오만하고 독선적인 과학자가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 SF 스릴러. 외계 곤충괴물에 맞서는 우주 전쟁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 이어, 폴 버호벤은 또 다시 황당하고도 공포스런 미래상을 담은 SF에 손을 댔다.

'할로우맨'의 특수효과는 기존의 영화들에 비해 진일보한 테크놀로지를 보여주고 있다. 피부, 혈관, 근육, 그리고 뼈가 차례로 사라지는 과정은 충격적이다. 과거 '투명인간'의 블루스크린 효과 보다 확실히 실감난다.

'할로우맨'에서 '엿보기'는 감독의 전력(?)을 감안하면 강도가 약한 편이다. 엘리자베스 슈를 훔쳐보는 것도 그리 큰 감흥을 불러내지 못한다. 거듭 얘기지만 '할로우맨'은 폴 버호벤이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 영화다.

스토리의 흐름도 상투적이고, 결투도 그저 그렇다. 그렇다면 '훔쳐보기'라도 제대로 해야될 것이 아닌가. 숨어 있는 이야기 중에 4시간짜리 감독판이 있다.

그는 112분짜리 극장판 외에 감독판을 구상하고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린다를 훔쳐보는 관능적인 장면을 비롯해 에로틱한 재능과 관심사가 총집결됐다. 그러나 감독판은 DVD로 출시되지 못했다. 20세기 폭스사가 원작의 흥행참패를 겪고 포기했다고 한다.

폴 버호벤이 그려낸 '투명인간'의 에로틱한 상상과 환상. 그것을 볼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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