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홍두깨에 꽃피우기

'한방울의 꿀이 한통의 쓸개즙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다'.

링컨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적이든 대중이든 상대를 더 많이 내편으로 만들고 설득시키려면 쓴 소리나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꿀과 같은 우호적인 말들로 상대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인간관계를 깨우친 비유다.

실제로 링컨이 평생동안 쓴 수많은 편지 중 가장 유명한 편지는 남북전쟁 당시 후커 장군에게 보낸 바로 그 꿀의 논리로 썼던 편지였다.

후커 장군이 비난받고 질책당할 수 있는 명백한 과오를 저질렀음에도 오히려 링컨은 부하 장군의 입장을 이해하고 옹호해 주면서 한방울의 꿀과 같은 말들로 자신의 의견을 설득시켰다.

링컨의 그 편지는 훗날 1926년, 1만2천달러에 경매됐다.

낙찰된 편지가격은 링컨이 50여년간 애써 벌어 모았던 저금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고 한다.

단 5분만에 쓴 그 편지가 그처럼 높은 값으로 평가된 것은 글씨가 예쁘다거나 극적인 사연이 담겨서가 아니라 공격적 비판보다는 화합과 설득의 따뜻한 용어들을 씀으로써 상생(相生)의 정신과 교훈을 담아낸 편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링컨을 존경한다며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까지 썼던 노 대통령이 지난주 모대학 특강에서 쏟아낸 말씀들은 링컨의 편지와는 달리 왠지 아직 날이 서 있고 적대적 비판쪽으로 쏠려있었다.

'숙청' '조폭' '별놈의 보수' 같은 공격적 어투로부터도 여전히 벗어나 있지 못한 느낌을 준다.

한방울의 꿀의 느낌보다는 한통의 쓸개즙같은 느낌이랄까.

고건 전 총리가 일할땐 세상이 조용하더니 누가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정치권에 말시비가 시끌시끌하기 시작한다는 실망스런 비평들도 벌써 나오고 있다.

또 하나 놀랍고 걱정스런 것은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점(占)을 믿고 사주(四柱)를 찾고 운(運)을 들먹이며 나라의 장래와 국가 경제를 장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리적 지성을 가르쳐야 할 젊은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대통령이 된 비결을 말하면서 '사주가 괜찮아서'라거나 '점을 쳐 보고 경선후보가 될거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 것은 분명 어른스럽지 못한 처신이었다.

살다보면 세상일을 이루는데는 운이 70%요 능력과 기량은 30% 라는 걸 느낄때도 있다.

그러나 점과 주술로 통치하던 고대국가나 제정(祭政)일치 시대도 아닌 디지털시대의 리더는 운칠기삼(運七技三)같은 말을 들먹이며 '내가 있는 동안(경제는) 문제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간의 화합과 의견이 다른 계층끼리의 상호 설득이 절실한 시점에서는 단 한마디의 호소와 비전조차도 합리적 논거를 바탕으로 모두를 공감시킬 수 있게 제시되고 논의돼야 옳다.

점괘와 사주, 운칠기삼 같은 얘기가 아니라 누구나 믿을 수있는 합리적 논리, 누가 들어도 그렇게 되겠구나 싶을 만큼 앞뒤가 맞는 현실성 있는 비전들이 제시되고 보여질때 비로소 리더십에 신뢰가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재계와 일부 학자들의 논리나 불경기 속에 허덕대는 서민 영세자영업자들의 체감경기 불안을 경제위기와 불안을 조성하는 것처럼 적대적으로 인식하고서는 신뢰와 상생의 길이 열릴 수 없다.

디지털화한 글로벌 경제시대, 국익중심의 안보시대속에 지도자의 사주가 어떻고 점을 쳐보니 어떻더라는 아날로그적 사고로 끌고가는 국가의 미래를 상상해보라. 자화자찬식 사주.점괘 이야기를 듣다보니 '홍두깨에 꽃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뿌리도 잎도 없는 홍두깨에서 꽃이 핀다는 속담은 가난하고 궁하던 사람이 어쩌다 운을 만나듯이 운에 기대는 현실성 없는 희망을 빗대는 말이다.

대통령 개인의 사주가 좋고 점괘가 잘 나오는거야 축원할 일이지 입방아 찧을 일은 아니다.

단지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디지털 세대들을 앉혀 놓고 점 얘기 사주 얘기에다 운칠기삼을 국가의 비전에 엮어 풀이하신 일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행여 홍두깨에 꽃피우는 얘기처럼 들렸을까 봐서 해본 말이다.

점을 믿으시니 아시겠지만 주역(周易)에서는 '군자(君子)는 태평하고 좋을 때 위태로움을 조심하고 움직일 때는 도리(道理)가 합하여 바른 운행을 잃지 않으며 고요할 때 이(理)와 함께 그 지킴을 잃지 않으매 운수를 점치는 것은 이처럼 경계하고 삼가 미리 염려하는 도(道)다'고 했다'.

그분의 운세처럼 국운도 잘 대비하고 난국을 경계하여 쉽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만 왠지 대나무걸린집 소반앞에 앉아 엽전 던지는 걸 보고 있는 기분이 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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