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사람들은 자기 편한 대로 세상에 잣대를 들이댄다.

일단 '나쁘다'고 무의식에 각인된 존재들이 고운 눈길을 받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벌레는 인간이 '나쁘다'고 낙인 찍어버린 것들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벌레를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교육을 받는다.

*'일충'.'해충' 강요된 이분법적 교육

그러나 자연계에서 가치 없는 것은 없다.

벌레 역시 지구 생명 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될 구성원이다.

곤충은 종의 수나 개체 수에 있어서 다른 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개미만 해도 지구에 1천조 마리나 서식하고 있다.

곤충이 가루받이, 재생, 채취 등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몇달 못가서 멸종하고 만다.

조안 록의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는 곤충들에 관한 상식과 신화, 관습 등을 엮어 곤충을 혐오하는 현대인들의 뒤틀린 자화상을 조명한다.

저자는 곤충에 대한 인간들의 두려움과 혐오가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임을 일깨운다.

곤충을 혐오하는 현대 사회의 이념적 왜곡은 왜 생겼을까.

미국의 철학자 샘 킨은 "개인과 집단의 그림자가 사람들도 하여금 내면의 적개심을 타자에게 투사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곤충은 '공동의 적'으로 만들기에 만만한 투사 대상이다.

조그마한 게 생긴 것도 괴상하고 습성도 이상하며 인간이 설정한 주거 영역과 경제적 의제를 마구 무시하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정말 위험한건 곤충박멸전쟁

책은 그러나 곤충이 인간에게 해롭다는 상식과 지식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인류에게 정말 위험한 것은 곤충이 아니라, 곤충 박멸 전쟁이다.

1945년 병해충에 의한 옥수수의 피해는 3.8%였지만 농약을 사용한지 40년이 흐른 1990년대 병해충에 의한 옥수수 피해율은 12%로 증가했다.

우리는 불쾌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좋아하는 것만 추구함으로써 생명의 근원과의 인연을 끊고 스스로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있다.

저자는 식량 증산이라는 미명 하에 이뤄지고 있는 녹색 혁명이 기실 '녹색으로 위장한 식민주의'라며 신랄히 비판한다.

책을 읽다 보면, 파리나 모기에 대한 증오심과 북한.이라크 아이들의 비극을 불러온 증오심이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차이와 차별을 경멸의 근거로 삼고 상대방을 제멋대로 적으로 간주하는 세계관과 권력자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을 읽더라도 바퀴벌레나 모기, 파리와 평화롭게 공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벌레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과 증오감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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