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골 초등학교에선 어떻게 공부할까

인구 감소와 부족한 문화시설, 열악한 시청각실과 도서실, 자꾸만 유학길에 오르는 친구들, 잦아들지 않는 통폐합의 목소리…. 농어촌의 작은 학교를 위협하는 목소리는 크고 다양하다.

그러나 농어촌 학교에는 장점도 많다.

흙을 밟을 수 있고, 시냇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

곳곳에 문화유산이 많아 살아있는 역사를 배운다.

학교는 농어촌 마을의 거의 유일한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전문-

"오늘 용은이는 수두로 조퇴했어요". 학생 16명에, 교사 5명인 의성군 금성면 상천초교. 매일매일 누가 조퇴하고 누가 지각했는지 전교생이 안다.

상천초교에는 '익명의 아이'가 없다.

모든 아이들이 모든 아이를 알고, 한 아이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가 된다.

모든 선생님이 모든 아이의 특징과 장단점을 알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의 특징을 알고 있다.

'성난다, 성난다'를 연발하는 심용준 선생님의 별명은 '성난다'이다.

미술과 체육을 잘하는 데다 언제나 재미있는 정유호 선생님은 인기 일등. 영어, 풍물, 만들기를 잘하는 김현미 선생님은 두 번째다.

담임 선생님 앞에서도 아이들은 "선생님은 2등"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아이들은 별 것을 다 배운다.

봄나물 뜯기, 곤충채집, 쑥 뜯기, 학교 앞 금성산 오르기, 고구마 심고 캐기, 마늘 심기, 들꽃기행, 텃밭 가꾸기, 운동장에 모여 별자리 찾기 등. 그래서 이 학교의 아이들에게선 햇볕 냄새가 나고 운동장에선 풀 냄새가 났다.

16명이 모두인 이 작은 학교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미운 털 박힌 녀석이 있고 귀염둥이가 있다.

1등이 있고 꼴찌가 있다.

싸움대장이 있고 말썽꾸러기가 있다.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다.

그러나 차별은 없다.

꼴찌, 미운 털, 말썽꾸러기, 싸움대장 모두 끼워 넣어야 짝이 맞기 때문이다.

짝이 맞아야 축구를 하고 운동회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싫어도 함께 걷는 법을 배운다.

전교생이 800명이던 안동의 초교에서 전학 온 3학년 준석이는 "이 학교가 훨씬 좋다"고 말한다.

공부에 별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동생 인석이(2학년)는 요즘 한창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개인교사 같은 담임 선생님 덕분이다.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교실 밖을 벗어날 기회가 많다.

봄이면 선생님과 아이들, 학교 아저씨까지 고사리, 산나물을 뜯으러 나간다.

기차를 타고 경주, 전북 고부 등 어디든 다녀온다.

가을 산과 들도 맘껏 다닐 수도 있다.

학생 수가 적으니 더 쉽다.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당당하게 질문하고 과감하게 몸으로 부딪힌다.

도시학교의 교육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이 찾는 대안교육이 작은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복식수업은 또 얼마나 좋은가. "복식수업에서 교과서를 다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사 나름대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 무기력하게 기대어 하루를 버티는 게 아니라 비로소 교육과정을 가르칠 수 있다". 이 학교 김현미 교사의 작은 학교 예찬이다.

공부가 끝나도 상천초교의 아이들은 오래 학교에 머물고 싶어한다.

해 질 때까지 학교에서 뛰어 논다.

느릿느릿 등교하고, 뛰어서 집으로 오는 도시아이들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은 꽃피고 낙엽 지는 뒷동산을 보며 시를 쓴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동산을 놀이터로 만들 줄도 안다.

그러나 이 활기찬 학교에도 걱정은 있다.

'농어촌지역의 작은 학교는 대부분 문을 닫을 것이다'는 소문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의 노력은 통폐합이나 폐교를 늦추는 것에 불과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교육청의 농어촌 작은 학교에 대한 시설지원은 적다.

고칠 것이 있어도 웬만하면 고치지 않는다.

해마다 학교는 낡아간다.

해마다 빛이 바래는 학교를 보는 학부모들은 '결국 폐교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한다.

그래서 도시로 이사를 가거나 유학을 보낸다.

이런 생각 속에 학교는 무너지고, 폐교가 된다.

상천초교는 아직 재래식 화장실이다.

수세식으로 고쳐달라고 건의했지만 "내년, 내 후년에 입학할 학생 수를 봐가며…"라는 대답만 들었다.

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은 학교는 없애야 할 학교일는지 모른다.

비용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작은 학교하나를 없애면 작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없어진다". 작은 학교를 아끼는 한 중년교사의 낮은 목소리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사진.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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