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녀교육 상담실

중학생을 둔 한 어머니가 찾아왔다.

성격이 밝고 명랑한 아이였는데, 최근에 와서는 말도 적고 웃는 일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담임교사에게 이 학생의 행동특징에 대해 물어봤다.

담임교사는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는데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휑하니 교실 밖을 나가 운동장을 배회한다"고 했다.

수업 중에도 그런다고 했다.

담임교사 역시 걱정이라고 했다.

학생을 만났다.

상담자와 마주 앉은 학생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비오는 어느날, 친구와 함께 우산을 쓰고 학원으로 가고 있었어요. 갑자기 친구가 '지각이다'며 뛰기 시작했어요. 뒤에서 불러봤지만 그 친구는 멈추지 않고 달렸어요. 그 순간 친구는 달려오는 차에 그만 치어 죽고 말았어요. 제 눈앞에서요".

그러고는 "제가 조금만 빨랐어도 그 친구를 구할 수 있었는데…"라며 고개를 숙였다.

학생은 자꾸 그 친구가 생각난다고 했다.

더욱이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그 친구의 어머니를 뵐 때마다 죄송스러워 죽고 싶어진다고 했다.

학생은 자책하고 있었다.

학생이 지고 있는 짐을 덜어주고 싶어졌다.

상담자와 학생은 역할연기를 해보기로 했다.

상담자는 학생역을, 그 학생은 친구역을 맡았다.

"나는 네가 생각나서 죽고싶어. 나는 죄인이야"라고 상담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학생은 "나 역시 네가 보고 싶다"고 한마디 건네더니 "무슨 소리하고 있어. 그 사고는 내가 앞을 보고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의 잘못은 없어. 오히려 나 때문에 네가 가슴아파하고 있다니…. 미안하다.

죽고 싶다고? 내가 죽은 후 우리 엄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봤잖아. 너도 네 엄마 가슴에 못을 박고 싶어? 차라리 네가 나 대신 우리엄마 한테 아들 노릇을 해주렴. 내가 위에서 잘 하나 지켜 볼게"라고 했다.

역할연기가 끝나자 학생은 "친구가 뭘 바라는 지 알겠다"며 "이제야 짐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후 학생은 비가 와도 더 이상 운동장을 배회하지 않았다.

자녀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러나 부모가 도와줄 수 없을 때는 상처가 너무 곪기 전에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권하고 싶다.

김남옥(대구시교육청 장학사)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edu@ imaeil.com 또는 팩스 053)255-0028로 상담할 내용을 보내주십시오. 신원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