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벌레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멕시코 민요 중 '라 쿠카라차'(바퀴벌레)란 노래가 있다.

가사의 내용인 즉, 바퀴벌레가 피울 마리화나가 없어서 더 이상 걸음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인데, 바퀴벌레가 좌충우돌하며 다니는 모습을 마리화나 피우며 비틀대는 사람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바퀴벌레는 방향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어 서툴게 날다가 사람과 부딪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악의에 의해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과 접촉한 뒤에 더욱 격렬하게 몸을 핥아 청결 유지에 힘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바퀴벌레가 많은 병원균 전파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것도 알고 보면 억울한 누명이다.

왜냐하면 분석 결과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로 하수구나 쓰레기 더미, 싱크대의 후미진 곳 등 비교적 더럽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발견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들은 인간이 더럽혀 놓은 지저분한 환경에 살고 있을 뿐이지, 그들이 환경을 지저분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쓰레기가 있어 바퀴벌레가 있는 것이지, 바퀴벌레가 있어 쓰레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곤충에 대한 우리의 적개심은 대부분 오랜 관습과 검증 되지 않은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부분 편견에 의해 우리의 적으로 규정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진짜 역겨운 벌레는 우리 머리 속에 있다.

우리는 일년에 35억 달러 이상의 돈을 곤충 박멸에 쓰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규정지어 놓은 해충들이 아니라, 유독성 화학약품을 퍼붓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다.

과다한 DDT 살포와 항생제의 남용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말라리아가 오히려 30여 년 전보다 더 극성이다.

이제 우린 무엇보다 우리자신부터 찬찬히 살핀 다음, 스스로 적대 관계의 공범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 독선과 호전성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조물주가 아끼고 사랑하는 피조물이 아닌가. 벌레를 더 이상 벌레 씹은 얼굴로 대할 일이 아닌 듯싶다.

구광렬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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