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밥을 넣어 만든 고춧가루와 그 것으로 버무린 김치, 중국에서 수입된 초마늘, 농약으로 목욕시킨 오렌지, 쓰레기 만두소로 빚은 만두….
우리 식탁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몇해 전부터 불어닥친 건강열풍이 올 들어서는 웰빙(Well-Being) 바람으로 이어지면서 건강과 자연적 삶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가족건강을 지켜야 할 식탁은 오히려 쓰레기와 농약으로 뒤범벅돼 주부들 사이에 '가족건강 적신호'가 발령되고 있다.
'이대로 앉아 당할 수만 없다'는 위기감으로 무공해 먹거리를 찾아 농촌속으로 찾아간 도시지역 주부들의 발걸음과 함께했다.
먹을거리의 위기 속에서 도시주부들은 무엇을 최대 희망으로 꿈꾸고 있을까.
연일 한낮 수은주가 30℃를 육박하는 한여름 폭염도 가족건강 지킴이로 나선 도시주부들의 농촌체험 열기를 꺾지 못했다.
구미시내 아파트를 중심으로 70여명의 도시주부들이 구미시농업기술센터가 마련한 '농촌사랑 그린교실'에 참가해 농촌을 알고 무공해.청정 먹을거리를 직접 수확하는 체험에 나선 것.
15일 이른 아침부터 작업복장에 밀집모자와 수건을 두르고 체험에 나선 주부들이 모이기로 한 선산읍 1호광장을 찾았다.
벌써 대부분의 주부들이 저마다 완전무장(햇볕을 피하기 위한 복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오전에 양파를 직접 캐 볼거예요. 그리고 오후에는 농촌여성 일감갖기 사업장인 청국장 공장에 들러 생산공정을 견학할 겁니다.
자칫 농민들에게 실의를 줄 수 있는 행동은 최고로 조심해야 합니다".
구미시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계 정인숙 담당은 도시주부들의 농촌체험이 자칫 호기심이나 일회성에 그칠까 우려한다.
농민들에게 실망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 담당은 참가 주부들에게 "농촌 체험을 생활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
도시주부들을 대상으로 '농촌사랑 그린교실'을 운영하는 본래 목적도 농촌체험의 생활이다.
도시주부들이 농촌의 실상을 피부로 느끼고 이들에게 든든하고 신뢰받는 소비자로 다가가 사라지는 농심(農心)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주부들을 실은 버스는 꼬불꼬불한 시골, 좁은 논.밭둑길을 한참 달린다.
10시쯤 도착한 곳은 구미시 선산읍 원3리 박낙현(53)씨의 1천여평 양파밭. 제법 따가운 햇볕이 이마와 등줄기에 구슬땀이 맺히게 한다.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러 온 농촌 아주머니들이 한창 양파를 캐고 있다.
밭 절반 정도가 수확한 양파들로 풍성하다.
밭 주인 박씨가 주부들을 사람좋은 웃음으로 맞는다.
"어서 오이소. 오늘 디게 더울텐데 어예 일할라꼬예". 박씨는 낫이며 호미 등 수확에 필요한 농기구들을 챙겨주면서 간단한 작업요령을 설명한다.
"양파는 줄기를 5cm쯤 남기고 잘라야 하니데이. 너무 짧으면 신선도가 오래가지 않거든요".
이 날 주부들은 양파캐기 작업만 하기로 했다.
캔 양파를 자루에 담는 작업은 숙련된 일꾼들만이 할 수 있다는 것. 한 자루에 대략 20kg씩 채워 담는 것은 오랜기간 경험을 가진 농촌 아주머니들의 몫이란다.
노영자(40.원호동 대우아파트) 주부는 "도시민들이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농민들의 피와 땀 때문"이라며 "먹을거리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분통을 토해낸다.
주부들도 속속 줄을 지어 한 무리는 줄기를 베고 그 뒤로 양파를 캐 올리는 손길이 분주하게 따른다.
"여기와서 힘좀 써봐요". 수첩을 들고 주부들과 얘기하는 통에 일에 소홀하자 한 아주머니가 강하게 쏘아붙인다.
올해 양파 농사는 그런대로 잘 됐단다.
상대적으로 가격은 작년에 비해 20kg 한자루에 2천원 이상 떨어진 6천원선. 그래서인지 어른 주먹 두개 만한 굵직굵직한 양파들이 쑥쑥 뽑혀 올라온다.
굵은 것은 굵은대로 잔 것은 잔 것대로 이랑을 따라 늘어놓는다.
한참 양파캐기에 열중하는데 저 편에서 노랫소리가 흘러 나온다.
"가슴이 찡하네요 정말로 ∼∼". 송정동 우방아파트에서 온 한 주부가 부른다.
이 주부는 "따가운 햇볕을 등에 이고 농사일을 해보니 정말 힘이 든다"며 "허리도 아프고 쏟아지는 땀방울을 훔치면서 농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것 같아 가슴이 정말 찡하다"고 한다.
정말로 가슴이 찡해서란다.
그리곤 이내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라는 노랫가락으로 농촌에도 희망이 찾아 올 것을 바란다.
1시간쯤 지났으니 농민들의 고통이 조금씩 느껴지는 시간이다.
최정하(47.원호동 점보아파트) 주부는 "다섯식구가 20kg들이 양파 한자루를 한달 만에 다 먹을 정도로 좋아해 식탁에 양파반찬이 없으면 안될 정도"라며 콜레스테롤을 억제하고 비만방지와 피를 맑게 해주는 등 효능을 소개한다.
이 주부는 이번 체험을 끝내고 자신이 캔 양파 두자루를 사갈 것이라 덧붙인다.
옆에서 한 주부가 "새집에 들어가기전에 양파를 늘어놓으면 냄새 등을 제거해 새집증후군 치료에도 탁월하다"고 거든다.
뙤약볕이 한창 기승을 부린다.
하나 둘 허리 통증과 더위, 목마름을 호소한다.
농사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몸으로 느낀다.
주부 황경희(48.선산읍)씨는 일행과 뒤떨어져 미처 캐내지 않은 작은 양파를 일일이 수확한다.
"농민들이 농산물을 자식같이 생각한다는 말이 실감난다"며 "상품 가치없는 작은 양파지만 그들의 피와 땀이 배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한다.
분주하기만 한 채 수확한 양파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박씨의 노모(72)는 "그래도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해 며칠 전에는 감자를 캘 인부를 구하지 못해 밭째로 넘겼단다.
"농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야 농산물을 귀하게 생각한다"고 뼈있는 말도 거든다.
주부들은 이런 노모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누구하나 아프다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젠 양파를 살 시간. 앞다퉈 자기들이 캔 양파를 골라 주인 박씨 앞으로 가져와 값을 치르고 차에다 싣는다.
시장에서 100원을 깎으려고 상인과 대거리하던 주부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박씨가 달라는 대로 순순히 값을 치른다.
농사일의 고통과 농산물의 소중함을 제대로 체험한 듯하다.
그래도 박씨는 시중보다 싼 값을 매겼다.
이날 주부들은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함을 배우고 밭 주인에게서는 넉넉한 농심을 엿볼 수 있었단다.
청국장 생산공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고된 몸을 의자에 파묻고 잠든 주부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꿈속에서 가족들에게 풍성하고도 청정한 먹을거리로 장만한 최고의 식탁을 내놓는 행복한 꿈을 꿀게 분명하다.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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