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대행(代行)정부 3개월 '유감'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 9층에 있는 국무총리 집무실이 한달째 비어 있다.

부총리인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경제부처가 있는 과천쪽으로 쏠려있을 뿐 광화문엔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가 있을 때나 한번씩 건너오는 정도이다.

그나마 회의도 매주 정례적으로 열리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빼면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총리로서 갖는 대외행사는 하루 한 건조차 이어가기 버거운 듯하다.

게다가 총리실 간부들은 신임 총리후보(열린 우리당 이해찬 의원)에게 그동안의 국정현안들을 보고하느라 여의도의 국회의원회관 등으로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다.

행정부를 통할(統轄)해야 하는 총리직이 사실상 실종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총리후보는 이미 지명돼 있으나 국회청문회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공백"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건(高建) 전 총리의 경우 지난해 1월22일 총리후보로 지명된 후 청문회를 거쳐 공식 임명되기까지 한달여 걸렸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지금처럼 '총리부재' 상황은 초래되지 않았다.

직전의 김석수(金碩洙) 전 총리가 계속 총리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총리 부재는 청문회 때문에 통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게 아닌 셈이다.

다름 아니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물러나는 고 전총리에게 신임 장관에 대한 임명제청권 행사를 요청하자 고 전 총리가 "순리가 아니다"는 이유로 고사, 사퇴서를 제출하면서 빚어졌던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총리 부재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행정부의 2인자라고는 하지만 실권이 그다지 없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총리위상의 한계 때문이란 지적이 우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는 고 전 총리때 그랬던 것 처럼 출범과 함께 총리직의 위상강화를 위해 애써왔다는 점에서 공백에 따른 파장이 과거보다는 클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측면, 특히 총리에 앞서 대통령 부재상황까지 이미 겪었던 탓에 둔감해진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는 헌정사상 초유라는 탄핵안 정국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는 대행체제를 이미 2개월이상이나 '별 탈없이(?)' 버텨왔던 터였다.

그래선지 지난달 25일, 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지 11일밖에 되지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고 전 총리의 순리론을 택하기보다 또다시 총리 부재상황으로 치달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총리의 대행체제 기간을 합치면 대행(代行)정부는 벌써 3개월을 넘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이같은 체제로 계속 이끌어가도 될 만큼 여유롭기만 한 게 아니다.

노동계 파업이나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등 각종 쟁점현안들이 잇따라 불거지고 특히, 경제난은 해를 넘기고도 좀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행정부가 겉으론 멀쩡하게 보일지 몰라도 속으론 곪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된다.

서봉대 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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