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채한 대기자의 책과 세상-입속의 검은 잎

유월은 유난히 눈물이 많다. 우리들은 왜 눈물을 흘려야 할까. 기쁠 때도 눈물이 나지만 오늘의 눈물은 그렇지 않다.

어제는 결코 영원히 마를 수 없는 눈물의 6.25, 그 앞서는 또 온 국민이 그토록 바랐던 젊은이 김선일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모래바람 드센 바그다드의 길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하늘도 비켜가지 않는다. 장맛비도 염치를 차리는지 멈췄다가 쉬엄쉬엄 내리는 게 눈물 같다.

눈물이 진주라면 흐르지 않게 두었다가 / 십 년 후 오신 님을 구슬성에 앉히련만 / 흔적이 이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작자 미상의 '눈물이 진주라면'이라는 옛 시조다.

진주같은 눈물. 우리들이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은 진주일까. 구슬성에 앉힐 자신 있는 눈물일까. 촛불을 수없이 켠들 그 촛물이 뒤엉겨 구슬로 성을 쌓은 진주성에 비견할 수 있을까. 없다.

그래도 수도를 옮겨야 하고 그래도 청문회를 열어야 하고 그래도 파병을 해야 하는 우리들. 지금 우리들은 누구인가. 이미 놔버린 '죽음'을 두고 악다귀처럼 되풀이되는 공방들. 인터넷 엽기사이트를 통해 수많은 네티즌들은 그의 죽음을 다시 한번 훔치고 있다.

그래도 촛불을 켜야 하는 우리들은 과연 누구인가. 시인 하이네는 이렇게 읊었다. "잠은 좋은 것, 죽음은 한층 더 좋은 것,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미 태어났지 않은가.

기형도. 지난 90년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우상이었다.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 그의 몇 안 되는 작품집 중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이 있다.

그 때는 그랬었다. 절망의 구석도 많았고 그것을 헤집고 나서지 못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가난했다. 자꾸만 물질로 기우는 의식들. 그래서 일까.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은 그 자체가 일종의 테러리즘이었다.

기형도는 이를 박차고 나가기가 힘들었을까. 그의 작품은 내내 이런 구석들을 철저하게 글로 파헤치며 절규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이라는 그의 시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고라도 하는 듯한 문구들이 애절하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구애 없이 자신을 잠가버리는 완숙함. 읽을수록 리드미컬한 운율에 끌려 묘한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이 있기에 요즘도 많은 젊은이들은 기형도를 읽는다. 그렇지만 기형도는 실제의 삶에서는 매우 유쾌하고 사람들과의 친화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그는 이런 고독하고 절망적인 시들을 남겼을까. 이 시집은 기형도의 10주기를 맞아 지난 99년 '기형도 전집'으로 다시 간행됐다.

이 전집에는 이미 출간된 '입 속의 검은 잎'과 '짧은 여행의 기록', 5주기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등 세 권을 한데 묶은 것이다. 여기에 그에 관한 연구기록들이 첨가되었다.

그가 세상을 떴지만 사람들이 더욱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의 시가 누구나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 그를 생각 할 때마다 뒤흔드는 허무와 절망에서 솟음 치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절망에서도 아름다움이 솟다니. 기형도는 왜 절망을 선택했을까.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을 살면서 결코 벗아 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죽음과 선택이라고. 죽음은 알겠는데 선택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그것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겸손과 오만, 용서와 원망, 정직과 속임수 등 우리에게는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다면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 아닌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선택이라고 했고 선택을 회피하는 것도 선택이라고 했다.

오늘도 우리들은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까. 총리를 선택해야 하고 이라크를 선택해야 하고 촛불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눈물이 많은 달에는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선택해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사오십대 좀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구석이 분명 있다. 그렇지만 오늘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그 구석 메우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이슬람을, 오늘의 바그다드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