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내가 어떻게 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능력이 없어서 실직을 한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지금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젠 집에서 쉬라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회가 나에게 지금부터 놀고 먹어도 된다 하니 내가 어찌하겠나. 모든 말을 다 동원해가면서 나는 아내에게 은퇴의 변을 늘어놓는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
퇴직금을 은행에 넣었다.
은행이자로는 먹고 살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을 나는 모른다.
혹시 아침부터 술병에 손을 댈까 봐 아내는 내 눈치를 살핀다.
눈만 뜨면 출근 출근하면서 바쁘게 설치던 내가 갈 곳이 없어서, 아침밥을 먹고 난 후에도 집안에서 어정거리고 있는 나를 보기가 민망스러운 모양이다.
내가 나를 두고 생각해도 신통한 것은 아내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사람이 이렇게도 편안히 살 수도 있는데" 싶었고, 은퇴 후의 삶이 즐겁기만 했다.
그 동안 기사가 있는 차량이 교통 수단이었지만 은퇴 직후 교통 수단이 끊어졌다.
나는 일단 걷기로 했다.
먼 곳에 가는 경우는 전철을 타기로 하고.
전철은 나에게 희한한 것이었다.
지하철에 내려가면 이게 사람 사는 모양새다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다만 한 가지, 전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불쾌했었다.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공짜 전철 타는 맛을 들이고 난 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어딜 가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전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설렁탕 한 그릇 정도도 어딜 가도 그냥 주면 정말 살맛이 더 날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무작정 집을 나선다.
"당신 어딜 가려고요?" 아내의 물음이다.
"아무데나" 라는 대답을 해놓고 집을 나서긴 했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나는 무조건 전철역으로 간다.
전철역에서 사람 구경을 하는 재미가 보통 재미가 아니다.
나를 구경하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겠지 싶었으나, 구경하려면 하라지 뭐 하면서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고맙게도 그동안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연구실 하나를 마련해주었다.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전철역보다 연구실로 간다.
등산 가방에다 노트북 컴퓨터와 책 한두 권,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준 김 밥 두 줄을 넣고 나는 매일 아침 연구실로 간다.
"당신 거기 가서 무얼 해요?", "소설 쓰는 일 이외에 무얼 하겠소. 당신, 알잖소. 내가 평생하고 싶었던 일 말이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평생 앓고 있던 문학 병의 치유가 가능하게 될 기적이 은퇴 직전에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현대문학'을 통해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자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하는 부모를 위한 교양서로, 어려운 난관을 뚫고 피아니스트로 대성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인 '피아니스트의 탄생'이라는 장편 소설까지 내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은퇴 후의 내 삶은 걷는 삶, 공짜 전철을 타는 삶,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삶이었다.
소설 쓰는 시간은 고통스러운 노동의 시간이지만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이라는 생각지도 않은 중책을 맡게 되었다.
걷는 삶, 공짜로 전철 타는 삶과 소설 쓰는 삶을 송두리째 빼앗길까봐 요즈음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도우소서.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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