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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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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그치자마자 무더위가 득달같이 달겨든다.

10년만의 폭염이라는 말처럼 굉장한 더위다.

에어컨 없이 사는 서민들에겐 공포의 열대야다.

왼종일 땀목욕을 하고도 모자라 하룻밤에도 몇 번씩 잠이 깨이다보니 아침부터 머리가 휑하다.

눈꺼풀에 이길 장사가 없다더니 시도때도 없이 눈이 감겨져 속수무책이다.

머리를 뜨끈거리게 하는 교통체증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물과 바람, 그늘이 있는 곳은 그 어디나 더위탈출족들로 복닥거린다.

그 표정들은 "어떻게 해도 달리 방법이 없어요"라고 하소연하는 듯하다.

더위가 독해진건지, 사람 몸이 물러진건지, 해가 갈수록 더위 참기가 더 힘들어진다.

예전엔 덥다,덥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60,70년대만 해도 열대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덥기는 했어도 사람을 지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바탕 목물을 하고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부채를 설렁이기만 해도 온 몸이 서늘해졌다.

뜨겁게 달구어졌던 땅도 해거름부터 슬슬 식어 저녁밥 먹을 때쯤이면 뺨에 와닿는 바람이 달랐다.

앞마당의 멍석이나 평상에서 뜨거운 밀수제비며 애호박 칼국수를 후후거리며 먹은 뒤 저녁바람에 땀을 말릴 때의 그 개운함이란….

때때로 여름밤은 작은 축제 같았다.

"달 아래 호박꽃이 화안한 저녁, 군색스럽지 않아도 좋은 넓은 마당에는 모깃불이 피워지고 옆에는 멍석이 깔려지고…(중략) 함지박에는 가주(방금) 쪄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노오란 강냉이가 먹음직스럽게 담겨나오는 법이겠다.

쑥댓불의 알싸한 내를 싫찮게 맡으며 불부채로 종아리에 덤비는 모기를 날리면서 강냉이를 뜯어먹고 누웠으면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핀다…"(노천명의 수필 '여름밤' 중).

또한 찬 물에 담가둔 수박을 숟가락으로 파내고 얼음덩이를 쪼개 넣어 설탕을 뿌려 휘휘 저은 수박화채의, 투박하지만 정겹던 맛은 요즘의 칵테일 플루츠가 따라갈 바가 아니었다.

곤히 잠든 한밤중, "수박 먹고 자라"는 어른들의 말에 졸린 눈을 부비며 먹던 수박화채의 추억. 그것은 더위를 저만치 화들짝 달아나게 했고 가진 것 없어도 마음만은 행복감으로 물들여 주었다.

오는 30일은 중복.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폭염도 말복만 지나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터. 어차피 피할 수 없을바엔 당당히 즐기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했다.

이 지독한 무더위 속에 숨어있을 즐거움을 어디 한 번 찾아볼까나.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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