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거청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 분단과 6.25전쟁, 군사독재 시기에 일어난 반민족적 범죄행위, 반인간적 폭압과 반민주적 박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부정적인 과거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여론조사기관들의 분석에 의하면 조사대상 응답자들의 60% 이상이 친일행위 등 과거사 청산에 대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를 들추기보다 현재의 난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비전을 논해야 한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여론은 과거의 부담과 적극적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과거청산 작업은 격렬한 논쟁 속에서 갈등을 동반하며 고통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비전향 장기수의 민주화 기여 인정 문제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의혹 조사 문제로 '국가 정체성 논쟁'까지 야기되었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간첩과 빨치산 활동에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국가 정체성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수적인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은 긍정적인 역사상과 기억에 기초를 두어야 할 국민의 정체성 수립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염려한다.
국가 정체성 논쟁은 과거청산의 범위 설정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과 민주화운동보상법에 의하면 1969년 8월 7일 이후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활동과 관련된 의문의 죽음만이 조사 및 보상 대상이 된다.
민주화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공권력에 의한 의문사는 조사 및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은 국가권력에 의한 권리침해 행위로 조사 대상과 폭을 넓히려는 것으로 헌법이 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충실히 따르는 조치라 할 수 있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 친일행위 조사 대상을 소위 이상으로 확대시키려는 것도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더 철저하게 청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청산 범위와 관련해서 반민특위 이후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찌른 것이라 생각한다.
6.25전쟁 전후 시기 전국적으로 약 100명에 달하는 무고한 양민들이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지만, 거창사건과 제주4.3사건에 대해서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해주는 방식을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다.
과거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 침묵하고, 어두운 과거를 기만하고, 거부하며,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행위는 명백히 두 번 죄를 짓는 행위이다.
이 '두 번째의 책임과 범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모든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며 현실적인 피해보상을 전면적으로 실천하는 길 이외는 없다.
과거청산이 추구하는 목표는 과거의 범죄적 유산과 단절하고, 과거의 과오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실천적 과제는 범죄적 제도 및 조직을 제거하고,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며, 범죄행위자를 처벌하고, 희생자에게 보상을 실시하고 민주적 정치문화를 수립하기 위해 과거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데 있다.
결국 이 과업은 정치의 공식적 측면, 즉 제도적 규제와 법률의 차원에서,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 관여하는 공공여론의 차원에서, 나아가 인간의 태도와 의견, 행위양식에서 발견되는 정치.문화적 심성의 차원 등 모든 면에서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업이다.
이 때문에 과거청산 문제는 정권이나 정파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포괄적인 기구는 여야의 정략적 대결의 틀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며 그 희생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전현수 경북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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