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이렇게 본다-며느리들이 느끼는 고부갈등

철들면서부터 계속 누나 셋의 결혼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보고 자랐다.

농촌으로 시집간 큰 누나는 파와 잡초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시어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혔었다.

빈한한 양반가문의 맏이와 결혼한 둘째 누나는 '애비없이 자란 자식'이라 예의범절을 모른다며 자주 시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어야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청상과부가 된 홀어머니의 맏이와 결혼한 막내누나는 '아들 겸 남편'이라는 시어머니의 주장대로 주말부부인 남편과 옳은 데이트 한번 못해보고 살았다.

그래서다.

내 아내에게는 이런 고통을 절대로 물려주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홀어머니의 막내아들이지만 자신도 있었다.

어머니는 한평생을 상소리 한번 안 하시고 사신 분이다.

매사에 유머가 넘치고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신다.

남에게 퍼주는 데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아무 이익도 바라지 않으신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가 내 아내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시어머니의 심술(?)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는 말이 백 번 지당한 말씀이었다.

출근길에 바쁜 아내가 힘들여 설거지를 해놓은 그릇을 어머니는 다시 손을 대셨다.

나물무침에서부터 된장국을 끓이는 일까지 두 사람의 입맛은 달랐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루가 지옥'이라는 말이 이해될 정도였다.

생각을 바꾸었다.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이고 내 아내에게는 시어머니뿐이라는... 어머니에게도 전했다.

아들은 아들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이라고... 덧붙여 물었다.

며느리와 아들이 한꺼번에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건지시겠느냐고.

그런 연후에 모든 것들에 대한 분리를 시작하였다.

설거지는 남편이,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일은 아내가, 호박죽은 어머니가 등으로 나누었다.

물론 아내와 애정표현도 더욱 각별하게 하였고 -어머니의 눈치를 절대로 보지 않고-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모두 아내에게 돌렸다.

어머니에 대한 모심도 예전과 같이했다.

지금은? 어머니는 아들보다는 며느리사랑이 더 극진하시다.

맞벌이하는 며느리가 애처롭다며 삶은 옥수수만 보면 사다 나르실 정도다.

며느리가 제일 잘 먹는 음식이라며. 한상덕(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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