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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를 읽으면 트렌드가 보인다-(12)고부갈등

'고부갈등'. 며느리라면 천형(?)처럼 거쳐야 할 결혼생활의 통과의례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보다 더 할말이 많다", "눈물 없이 못 듣는다" 등등. 며느리는 결혼이란 '전장'에서 남편과의 '전쟁'과 함께 또 하나의 '고부 전쟁'을 거쳐야 한다.

낯섦과 미움, 갈등을 거쳐 애증을 겪다가 화해와 화합으로 이어지는 것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사이클이다.

그러면서 며느리는 서서히 '시댁 사람'이 돼 간다.

고부갈등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면면히 이어져 오는 가정의 역사다.

30대와 40대, 50대 며느리 4명으로부터 과거에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고부갈등을 들어봤다.

'고초(고추)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하더라.'

김소운의 자료집(1933년)에 나오는 시집살이 구전민요다.

도대체 얼마나 맵기에 고추보다 더할까.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것이 며느리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임신해 입덧을 해도 사 먹을 수가 있어야지"(정경숙), "부부싸움도 못하고"(김영미), "부엌에서 찬밥 먹는 것은 정말 싫어"(이경화) , "생활 습성이 안 맞아요"(양인숙).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첫 갈등은 '이질적인 생활방식'을 강제하는 시어머니에게서 나온다.

'생활의 간섭'이고, '부부생활의 방해'이다.

늦게 일어나지도 못하고, 외출은 꿈도 못 꾼다.

애정표시도 제대로 못한다.

"너거 이번 주 토요일 온나"라는 말 한마디에 주말계획이 와르르 무너진다.

처음 어색하던 분위기가 '시집살이' 이야기가 나오니까 저마다 한마디씩 덧붙인다.

"벽에 못을 쳐야 되는데 시어머니가 그래요. '가(남편)는 그런 것 못한다!' 3년간 군대까지 갔던 아들도 못하는데 며느리가 해야 되나요?"(김). " '지 색시 챙기는 것 봐라'는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시댁에 가면 남편더러 절대 나 챙겨주려고 하지 말라고 해요"(이). "막내로 커서 고부갈등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살면서 너무 간섭하고, 힘들게 하니까 나중에는 남편도 미워지더라구요"(정).

"고부갈등은 여자 대 여자의 삼각관계같아요."

아들을 사이에 두고 엄마가 '니한테는 지기 싫다'고 며느리한테 심술을 부린다는 것이다.

아들에 대한 기대치는 어떤 엄마라도 상향조정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넘치는 며느리라도 시어머니가 보기에는 양이 모자라 보이죠." 그래서 공연히 며느리가 마뜩잖고, 아들이 며느리만 챙기면 서운하게 된다.

그러나 며느리쪽에서 보면 이런 갈등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거기다 자기편으로 여겼던 남편이 '적군'으로 변할 때 서러움은 말도 못한다.

"너거 엄마 아니라고 그러냐!"고 말을 할 때는 눈물이 팍 쏟아진다.

"고부갈등에서는 남편이 '야시'(여우)가 되어야 해요."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고부갈등이다.

"남편이 누구 말이 맞고 누구 말이 틀리다고 거들 때는 정말 남같이 느껴지더라구요."

특히 경상도 남편은 가부장적인 가정구조에서 자라 시어머니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충격파는 고스란히 며느리 몫이 된다.

거기에 시누이까지 가세하면 며느리는 고립무원이 된다.

"고부갈등은 대화로 풀어야 된다고 봐요."(김) "며느리에게 불만이 있으면 솔직히 있다고 얘기하면 좋겠어요."(정) "뒤끝이 없어야 되는데…."(이)

"옷을 사드렸는데,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이에요. 나중에는 한번도 안 사다준 시누이가 보란 듯이 옷을 사다 주는 거예요. 거기다 남편까지 가세해 싸구려 옷을 사 드렸다고 나무라는 겁니다.

그때 남편하고 같이 옷 샀는데 말이죠."

차라리 옷이 마음에 안 든다며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지만, 한번 삐끗한 관계에서 그런 말도 힘들다.

"시어머니도 한때는 며느리였잖아요. 예전 같으면 시집살이도 더 매웠을 텐데, 며느리 심정을 모르는 것이 이상하죠?"(양) "그건 며느리도 늙으면 다 똑같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않을까요. 호호호…."

"그런데 살아보니까 시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더군요. 뒷전으로 밀려나는 심정이랄까. 심술도 날 것 같아요. 지금의 나를 보면 말이죠."(정) "며느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른도 받겠죠. 최근 장수하는 어른들의 장수비결이 고부갈등이 없는 가정의 화목함이었잖아요."(김) "서운했던 마음이 애를 낳으니까 싹 가시더라구요.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돌봐주셨는데, 국 끓이고 기저귀 빨고, 애를 안고 귀여워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친정어머니 같았어요."(이) "지금도 김치며 반찬을 다 해다 주시는데,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한번씩 생각해요."(양)

나이가 들어 자식을 가지면 시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모양. 최근 젊은 며느리한테 구박받는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요즘 시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참 잘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데 오히려 만만하게 여기고 막 대하는 경우가 있어요."(김)

며느리에게 너무 잘해주는 시어머니가 있었단다.

생일날 선물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목걸이도 사주며 친정어머니보다 더 다정다감한 시어머니였다고. 어느 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며느리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한 말. "우리 집에 너무 자주 오지 마세요."

"얼마나 서운했을까, 요새 젊은 며느리 너무 심해, 그 시어머니 너무 섭섭했겠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

고부갈등은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며느리의 숙명같은 굴레다.

세월이 변하면서 그마저도 많이 변하고 있다.

친정어머니 같은 시어머니, 딸 같은 며느리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보듯 젊은 부부들의 시부모 안모시기로 인해 자녀와 떨어져 단독으로 사는 시부모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은 4명의 며느리도 "지금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피할 수가 없다면 시부모와 같이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는 한 4, 5년 모시고 살았는데, 지금 살아계신다면 참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정경숙씨가 말하자 모두 수긍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사진 : 최근 며느리의 입지가 강해지면서 고부갈등이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부갈등을 얘기하는 주부 정경숙, 김영미, 이경화, 양인숙씨(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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