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지난 마당에 가을 햇살이 오지게 쏟아진다.
여름내 집 마당을 밝히던 꽃들이 씨앗 맺을 준비 하느라 시들고 있는 틈새로 주홍빛 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초여름 하얀 꽃이 필 때는 뽐내던 여름꽃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것이 어느새 꽃 진 자리로 눈에 띄게 조롱조롱 매달린 주홍빛 꽈리봉지. 빨갛게 물들어 매달려 있는 모양이 마치 불을 켜놓은 등촉처럼 빛난다.
그래서 꽈리를 등롱초(燈籠草)라고 부르는 것일까. 굵은 앵두만한 열매를 붉은 봉지가 감싸고 있는 모습은 얌전해 보이면서도 화려하다.
마치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걸어도 관능미가 아른거리던 저 조선시대의 참한 여인 같다.
요즘 어린이들은 꽈리가 무언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는 꽈리란 흔한 놀잇감이었다.
구슬만한 동그란 고무주머니에 바늘로 찌른 것 같은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쪽을 입술에 대고 윗니로 깨물면서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하면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는 게 참 재미있었다.
나는 고무꽈리를 불었지만 시골친구들은 꽈리나무에 열린 빨간 열매를 따서 부는 모습을 보았다.
시골에 가면 딸들이 많은 집엔 으레 장독대 부근엔 꽈리나무가 자랐다.
꽈리는 편도에 잘 듣는 약재이기도 해서 그때는 꽈리를 심는 집이 많았다.
이젠 좋은 장난감이 흔한 세상이고 특효약도 많으니 사람들은 꽈리를 영영 잊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꽈리는 이 가을 마당 한편에서 여전히 주홍빛 초롱에 불을 밝혔다.
등롱초가 뿜는 붉은빛 속에서 꽈리를 불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 얼굴과 고향집 장독대가 비친다.
추억을 비추는 꽈리는 옛 여인처럼 수줍은 볼을 붉히고 가을과 함께 빨갛게 익어간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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