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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가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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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이색적이게도 겉봉투에 '시간이 넉넉하실 때 열어보세요'라고 쓰여져 있었다.

뭣때문이지? 궁금하여 얼른 뜯어보니 아하, 앞뒤로 빽빽하게 쓴 편지지가 8장이나 들어있었다.

종이편지! 그것도 볼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쓴 편지는 e메일에 익숙한 눈에 오랜 옛친구라도 만난 듯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적적한, 외로운, 한가한 날입니다"로 시작된 편짓글에는 인생의 무상함과 쓸쓸함이 비에 젖은 낙엽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성실한 전문직 남편과 명문대학에 입학한 아이들, 자기 자신도 꽤 괜찮은 직장에다 짬짬이 책도 출판하며 하루 24시간을 누구보다도 탄력있게 보낸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지금 한껏 외로워하며 가을을 앓고 있었다.

갑자기 쏜살같이 빨라지는 세월의 속도를 피부로 느끼며, 지금껏 자기 인생무대에서 주연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서 점차 밀려나는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결에 가을이 익어간다.

무병(巫病)처럼 계절병을 앓을 때다.

하늘빛이 푸르른 날은 왜이리 눈부시게 환하냐고, 흐린 날은 마음에 안개비가 내린다고,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신동엽 시인도 가을을 두고 "덜 여문 사람은 익어가는 때/ 익은 사람은 서러워하는 때"(시 '초가을' 중)라고 했나보다.

누구라도 불현듯 외로움을 타게 되는 이 계절에는 그래서 어느 날 불쑥 누군가에게 편짓글을 끄적여 보고 싶어진다.

또한 적당히 낡아서 오히려 더 편해진 옷처럼 흐르는 세월의 더께 속에서 미운 정 고운 정 깊어진 그런 이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왠지 마음이 낮아지고 가난해지는 이 계절엔 지구라는 별 위에서 한 시대를 함께 사는 것 만으로도 그들이 마냥 더 친근하게 여겨지지 않는가. 그러기에 늘 마음만 주고받는 사람들이라도 이 가을엔 때로 그립고 궁금해지는 이들에게 한 번쯤 편지를 써봄이 어떨까. 기다림에 인색한 것이 '시간'이라는 걸 벌써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는 낙엽들이 알려주므로. 자꾸만 입속에서 한 노래가 맴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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