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을 만나는 영화-上.감성편

여름영화 시즌이 막을 내렸다.

기라성 같은 대작들이 건곤일척을 겨루는 여름이 지난 후 가을 극장가는 마음을 살찌우는 영화들의 경연장이 된다.

감성 코드로 물든 가을 영화와 화제작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해본다.

◇우리 형

연년생 형제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은 '우리 형'(안권태 감독·8일 개봉)은 감동의 밀도가 높은 작품.

누구에게나 형제란 때로는 친구, 때로는 원수 같은 존재다.

그들은 집안의 라이벌이자 간혹 사랑의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 핏줄임이 무색할 정도로 성격도, 외모도 판이할 경우 갈등은 더 심화한다.

이 영화는 형제가 가진 이 보편적인 묘미를 모두 담은 느낌이다.

연년생 형제지만 형이 구개열(언청이)로 학교를 1년 쉬게 되면서 같은 학년이 된 모범생 형과 문제아 동생. 그리고 형만 편애하는 엄마와 형제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한 여학생의 등장으로 빚어지는 갈등톤은 여러모로 익숙한 줄거리를 연상하게끔 만든다.

여기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동서고금의 진리까지 보태질 정도니.

하지만 이 영화는 '식상함'이란 단점을 오히려 보편적인 감동으로 승화시켜 객석의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꽃미남'으로 눈에 힘만 주던 원빈의 연기변신이 돋보인다.

영화 제목을 '우리 동생'으로 바꿔야 할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한결 유연해진 몸놀림과 표정연기로 자신의 열정을 막힘 없이 풀어낸 원빈에게 무게중심이 더 쏠려있다.

큰 무리 없이 이를 받쳐주는 신하균도 매력적. 다만 '친구'의 속편처럼 느껴지는 게 아쉽다.

상영시간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웨일 라이더

고래의 등을 타고 온 '파이키아'라는 마오리족 소녀는 2003년 세계 영화계 최고의 사건이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이 뉴질랜드산 저예산 영화 '웨일 라이더'(니키 카로 감독)에 대한 환호는 봄날 산불처럼 번져갔고, 급기야 13세의 마오리족 출신 소녀 배우는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까지 지명되기도 했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까. 오래 기다린 만큼이나 기대도 큰 이 영화는 8일 국내에 선보인다.

영화는 신화와 전설의 세계를 아름다운 풍경의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풀어헤친다.

장남만이 부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관습이 있는 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소녀 파이키아(케이샤 캐슬 휴즈)가 겪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숭고하다.

아니 밝고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신인 아역배우인 케이샤 캐슬 휴즈가 펼쳐 보이는 무공해 연기는 전반부 인물에 대한 공감을 후반부 눈물로 이어지게 한다.

극장을 나서면서 '어떤 속임수도 기교도 없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영화'라는 어느 평론가의 코멘트가 머릿속을 맴돈다.

상영시간 101분, 전체 관람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유키사다 이사오 감독·8일 개봉)는 '가을바람 불어오면 멜로영화 관객 든다'라는 충무로의 전통 깊은 격언을 충족시킬만한 영화다.

한때 일본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 영화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감정을 과잉시킨다.

물론 사랑에 관한 한 일본과 한국의 정서가 다르다는 뉘앙스를 풍겼던 '냉정과 열정사이'의 국내 흥행 실패담이 언뜻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비켜갈 듯한 느낌이다.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온 투명한 슬픔'이라는 광고 문구만 봐도 가슴이 찡해지는 걸 보면, 제법 관객의 눈시울을 적셔줄 듯하니까.

이 작품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들의 약점은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점. 그래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열혈백서 '고'를 만들었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는 각색의 묘미를 살려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다 영상에 어울릴만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첨가, 원작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상영시간 138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노센스

'내가 간직한 기억이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이식된 것이라면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지난 1995년 '공각기동대'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우울하고 냉소적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열광했다.

이후 무려 9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그 속편이 찾아왔다.

'이노센스'(오시이 마모루 감독·8일 개봉)라고 명명된 이 애니메이션은 전편보다 비주얼은 물론 인간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한층 더 심화됐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과 인형 그리고 인간의 삼각관계를 통해 인간의 의미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영화는 어렵다.

철학자들이 내뱉는 듯한 우문현답 수준의 화려한 수사들이 대사로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등 솔직히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해하기가 녹록지 않다.

여기에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실사 중심의 비주얼은 영화에 대한 이해력을 더욱 떨어뜨린다.

화려한 영상에 도취하다 보면 흘러가는 자막을 놓치기 십상. 상영시간 99분, 12세 이상 관람가.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사진: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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