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코스모스의 걱정

가을이 오면 언제나 코스모스가 먼저 떠올랐다.

가을 길에서 길손을 반기던 코스모스의 족보는 몇 십대조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시골길의 명문이었던 코스모스가 이제는 멸문의 위기에 놓였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노란 꽃을 피우는 '누드베키아'가 가로(街路)에 들어선 후로 코스모스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자 가까스로 꽃피운 코스모스 몇 송이가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들판을 근심스럽게 바라본다.

들판에서 출렁일 때는 잠시 사랑받지만 이제 껍질을 벗고 시장으로 나가면 냉대 당할 우리 쌀을 걱정하는 것이다.

'쌀밥에 고깃국'을 인생의 목표처럼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쌀밥은 밀가루 빵에 밀려 '찬밥'이 되었다.

수입쌀이 밀려온다.

그 옛날 토종쌀 맛에는 근처에도 못 오던 안남미(安南米) 같은 못난이가 아니라 값싸고 맛좋고 기름이 찰찰 도는 수입쌀이 산 넘고 물 건너에서 온다.

그것도 혼자 오는 것이 아니다.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나라님의 후원을 받으며 전장으로 나가던 장수처럼 갑옷 입고 투구 쓰고 승전을 다짐하는 빈틈없는 작전 후에 떼로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 쌀은 오로지 혼자서 나간다.

관군도 없고 지원군도 없고 싸울 무기도 없다.

오로지 애국심 하나에 호소하며 갑오년의 농민처럼 맨손으로 싸워야 한다.

맨손으로 싸우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끝까지 싸워야 된다.

들녘을 비추던 해가 이슥해지자 노을이 불타며 대지를 삼킨다.

누드베키아에게 자리를 빼앗긴 코스모스가 우리 쌀을 걱정하며 노을을 바라본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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