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고당 조만식 선생 사망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대표적인 정치가 중 한 사람인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이 1950년 10월 18일 평양형무소에서 사망했다. 1908년 중학교를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3년간의 영어학교 생활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를 접한 뒤 이를 훗날 독립운동의 거울로 삼았다.

1913년 메이지(明治)대학 졸업 후 귀국한 그는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있다 1915년 교장이 됐다. 1919년 교장직을 그만두고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평양감옥에서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1922년에는 오윤선과 함께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장려운동을 벌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 결성에도 참여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좌절됐다. 그후로도 조만식의 무저항 민족주의운동은 계속됐다.

1945년 광복 후에는 평남건국준비위원회'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점령'을 꺼려했던 그는 소련군정청에서 북조선인민정치위원장 취임을 권유했으나 거부했다. 그 해 11월에는 조선민주당을 창당, 당수가 되어 반공노선을 내세우고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당연히 소련군정청 당국과 공산주의자들의 협박과 회유가 계속됐지만 조만식은 굽히지 않았고, 월남을 종용하는 제자들의 간청도 거절했다.

조국과 민족만을 위해 활동하던 그는 결국 6'25전쟁 발발후 공산당에 의해 처형되고 말았다. 백범 김구가 암살된 지 1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1867년 미국,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 ▲1906년 대한제국, 최초의 기념우표 발행 ▲1967년 소련 우주선 비너스 4호, 최초로 금성에 착륙 ▲1979년 정부, 부마(釜馬)사태로 부산에 계엄령 선포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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