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과세상-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

*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 박홍갑지음

너무 까분다. 까불이들 세상. 호박잎에 청개구리 뛰어오르듯 까불어댄다. 우리시대를 너무 얇게 보는 탓일까. 아니면 너무 두터워 범접하지 못함을 스스로 못 이겨 이렇게들 까불어대는 것일까. 볼수록 가관이다.

날이 갈수록 목불인견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까불어댄다. 강엄의 '효완공시' 한 구절 읽었어도 이렇지는 않을 것을. "추위와 더위도 서로 오가며 내왕하는데 하물며 공명이 어찌 영원할 수 있으리(寒署有往來 功名安可留)". 세상에 영원한 공명이 어디 있다고.

그렇지만 사람들은 공명으로 흔히 잘 뭉친다. 공명이 떳떳지 못하면 그건 사교로 위장하면 된다.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자신들의 결점들을 감추며 철저하게 공허하고 빈약한 면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이다. 그래서 더 뭉치고 뻔히 알고 있는 결점만큼은 서로 말하지 않고 이익만 챙겨 나눈다.

쇼펜하우어는 비교적 우수한 부류들이 이런 식으로 뭉치면 무차별적이라고 했다. 겁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의 무리가 서로의 체온을 유지하며 추위를 피하려고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가시 때문에 아픔을 견디지 못해 서로 떨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다시 떨어졌다. 그러나 추위는 더 견디기 어려웠다. 다시 몸들을 붙였다. 아픔은 여전했다.

추위와 가시의 아픔 두 가지의 고통을 여러 차례 되풀이한 끝에 고슴도치들은 서로 따뜻하며 참고 견디기 좋은 거리를 발견했다. 사람들도 결국 이렇게 모인다고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의 우화를 빌려 말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내면의 따뜻함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한다"고. 몸을 비벼 비로소 따뜻해지는 사람(그것이 진정 따뜻한 것인지 아니면 뜨거워도 말못하고 따뜻한 척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과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패거리들의 둔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따뜻함, 아니 뜨겁고 뜨끈뜨끈한 역겨움. 그래서 온후한 이태리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 고독한 생활방식을 나는 언제나 추구해 왔죠/ (들이나 숲이나 작은 시냇물에 물어 보세요)/ 머리가 둔한 사람들을 피하려는 일념에서지요/..."

요즘은 머리 둔한 사람들이 적을 것 같다. 머리 좋아지는 영양소가 얼마나 많이 개발되었는가. 그런데도 웬놈의 패거리는 그리 많은지. 패거리문화라는 말까지 생겨 자극하고 있으니 말이다. 머리 좋은 패거리들. 나랏님이나 재상이나 신하나 패거리 없이는 불안한 시대. 까불지 않으면 불안한 시대. 더 강한 자극을 만들기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까불어야 한다.

나라는 나라대로 조직은 그 규모가 작아도 작은 대로 까불거리는 역겨움. 그 주위에는 언제나 내가 왕이라는, 내가 임금이라는 가당찮은 위선이 버티고 있다.

가증스런 왕이나 임금이시여. 그리고 그 신하들이시여.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박홍갑. 바른 역사를 남기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조선시대 사관들의 사초들. 그것이 남긴 수많은 사론들에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책으로 묶었다는 게 저자의 변이다.

인류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방대한 왕조실록을 남긴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뽑은 비판적인 눈들은 오늘의 패거리들에게도 여전히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으리라. 특히 왕들을 에워싼 둔한 패거리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무엇보다 직관이 중요시되었던 조선시대의 사관들.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그 상대가 누구든 가차없이 맞서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 이어갔던 사관들. 바른 역사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여겼던 이들이 지닌 바른 역사는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 비쳐지고 받아들여지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안타깝다고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3부로 엮어져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사서뿐이다' '이 일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다'등이며 여기에 부록이 담겨 이해를 돕고 있다.

전문적인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가볍게 읽어 볼만한 책이다. 그렇지만 은근히 뒤 배경에 흐르는 왕권이나 절대자에 대한 엄청난 권력에 눈길을 돌리면 이 책의 의미는 반감한다. 이를 살펴 읽어야 한다.

지금은 목숨 버려가며 노라는 대답을 줄 현대판 사관이 있을 리 만무한 시대에, 더군다나 까불어야 득세하는 시대에는 입맛이 다셔지는 대목도 많다. 그런 것이야 어쩔 수 없질 않는가. 작은 조직에서까지 현대판 왕들이 득실대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획린가(獲麟歌)에 나오는 공자의 탄식이 불현듯 생각난다.

"기린이여 기린이여 내 마음이 참으로 슬프구나!(麟兮麟兮, 我心憂). 기린은 예부터 현명한 임금이 세상에 나왔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상서로운 짐승. 아직 명군이 나오지 않았는데 기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는 명군이 세상에 나올 가망이 없는가 싶어 당시의 현실을 이렇게 탄식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공자의 탄식 같은 것보다는 잘 까불면 되는 세상 아닌가. 까불이여 까불이여 민초들의 마음이 참으로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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