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두 마리 염소

대화와 타협은 오간 데 없고 정쟁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또다시 저질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서로 상대방은 인정해 주지도 않고 위아래도 없으며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관중들이 외면하는 저들만의 마당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28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장은 우리나라 정치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야당폄훼 발언이 발단이 됐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 끝에 한나라당은 오후 본회의를 거부하고 모두 퇴장해버렸다.

첫 출발부터 일그러졌다.

한나라당은 총리 해임건의안을 내고 앞으로의 의사일정을 거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나라를 안돈시켜 나가야 할 총리가 여권의 입장만을 두둔한 채 국정 운영의 정치적 파트너인 야당을 '차떼기 당'이라고 몰아붙임으로써 되레 국민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발언의 진의와 배경은 차치하더라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아쓰고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며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고 치자.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나쁜 당'이라고 비난하고 매도한다 하더라도 국정운영의 실질적 책임자인 총리가 야당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 않아도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불쑥불쑥 내뱉는 '돌출 발언'으로 국민들이 가슴을 조이던 터이다.

그런데 이제는 총리까지 나섰다.

국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마냥 불안하기만 하다.

같은 날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사전배포한 국회 대정부질문 원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에 빗대 '깍두기 머리 임금'으로, 여권 내 386세대를 '기생계층'에 비유하며 사기꾼으로 몰았다.

아무리 대통령이 패러디의 주인공이 되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신문 만평에 등장하는 시대라곤 하지만 또 마음에 들지 않고 못마땅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라지만 그래도 지나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날 국회에서 벌어진 두 가지 해프닝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사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총리는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나쁜 당'이라고 몰아세웠고 한나라당 의원은 대통령을 우화의 주인공으로 희화화해 모욕을 주었다.

이솝우화에 두 마리 염소 얘기가 나온다.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만났다.

두 염소는 서로 먼저 건너려고 상대방에게 비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두 염소는 서로 물러나지 않았다.

두 염소는 다리 위에서 서로 뿔을 앞으로 내밀며 상대방을 밀쳤다.

그러다가 그만 함께 다리에서 떨어져 시냇물에 빠져 버렸다.

여야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양보와 타협을 않은 채 충돌한다면 모두가 두 마리 염소 꼴이 되지나 않을까.

이날 대구가 고향인 한 여당 의원은 대정부질문을 통해 "노 대통령은 이념적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나야 하며 이 총리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비판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대통령과 총리에게 쓴소리를 했다.

또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야당은 야당답게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모두들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서 일의 돌아가는 형국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다른 이들의 허물을 함부로 탓하질랑은 말자.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구나,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 고치과저.'

조선조 12대 왕인 인종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이 남을 헐뜯는 것을 경계한 시조다.

홍석봉 정치1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