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국가와 대학의 자율성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정부안이 발표되었지만, 이로써 문제가 종식되었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부안은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을 중시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는데, 대학 쪽에서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내신의 내용 자체를 믿을 수 없는 데다가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차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특히 차별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교의 교사들과 학부형들은 근본적으로 그 차별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항의한다.

이런 모습은 얼핏 보아 대학 진학의 한 방법론에 관계된 일 같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이념 구조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로서,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모든 대책은 미봉책이 되고 말썽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대학'이란 무엇이며 더 나아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에 대한 이해 속에 들어 있다.

먼저 우리는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지만-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가장 명쾌하게 밝혀졌듯이-그 형태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 결코 평등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쌍둥이도 똑같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짐짓 수용하지 않으려는 데서 왜곡된 평등 이데올로기가 발생하고, 이를 무리하게 사실화하려는 과정에서 현실과는 괴리된 주장들이 나타나며, 그것들이 마침내 분란의 싹으로 자란다.

한편 대학은 그 숱한 인간들 가운데서 필요한 인재들을 골라 자신의 건학 이념과 교육 방침에 따라 교육시켜 더 좋은 인재로 양성하고자 하는 문화적 욕망의 제도물이다.

오늘의 사회가 대중사회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같은 원초적 욕망과 그 에너지의 운동은 부인되려야 부인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발생, 발전하기 이전부터 자생적으로 태동된 대학의 운명이다.

자, 보자. 1871년 통일 독일이 비로소 탄생하였지만 베를린 자유대학은 그보다 앞선 1810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수백 년 전인 1386년에 세워지지 않았는가. 기본적으로 대학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지식 욕구, 발전 욕구라는 본능과 관계되며 국가를 갖고 싶어 하는 안전의 욕구보다 선행하거나 최소한 병립하는 것이다.

대학은 국가에 예속되는 기관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가 대학을 도울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그 행로에 개입할 수 없는 이치는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한다.

민주화 세력으로 불리는 정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였으니 이 평가는 정당해야 하리라.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대학 입시를 통한 대학 정책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민주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존중 아닌가. 이를 통해 각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그 결집을 통해 사회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이데올로기 아닌가. 지난날 군사 독재에 의해 이 원리가 억압당하는 꼴을 겪어 왔으며 오늘의 민주화 세력은 이에 맞서 투쟁하였고 지금 그 이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왜 독재의 잔재인 대학 개성의 억압을 철폐하는 데 앞장설지언정 그것을 오히려 강화하는 정책을 거들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학은 입시 제도를 포함하여 여러 형태의 국가적 간섭을 겪고 있다.

대학은 한편으로는 교육 시장의 원리에 의해 학생이라는 말 대신 등장한 교육소비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과 관계없는 국가의 눈치를 본다.

학생들은 학부모와 교사 혹은 그들 단체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소비자 단체로서의 압력을 가하며 정부는 이를 직·간접으로 도와준다.

게다가 대학을 향해서는 무슨무슨 평가라는 이름으로 간단없는 지도를 행한다.

대학은 교육 시장인가 아니면 국가 기관인가. 종사원의 한 사람인 교수로서 당혹을 지나 비애를 느낄 때도 있다.

최근 국내 유수한 대학 총장들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듯 자율성을 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자율성을 갖지 못한 대학은 자율적으로 아무런 연구와 교육도 할 수 없는, 배정된 젊은이들의 임시 수용소에 지나지 않는다.

인재가 부일 수밖에 없는 국부(國富)가 몰락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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