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릴라 이스마엘

'조물주는 인간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 종교인이건 아니건 간에 인간을 이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더 나아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수식어로 치장까지 한다.

과연 이 세상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일까?

20여 년간 미국 시카고에서 청소년 교육서적 출판 편집자로 활동했던 다니엘 퀸은 이러한 생각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댄다.

그가 쓴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간문명이 초래한 지구적 위험을 고릴라의 입을 통해 경고하면서,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설파한 책이다.

한마디로 고릴라에게 배우는 공존의 지혜인 셈.

"사람들은 흔히 '공존'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그 공존의 대상도 인간일 뿐이다.

이 지구상의 생명체는 오직 인간뿐인가." 저자는 세계를 마치 자신의 재산인 양 취급하고, 적인 양 정복하며,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지 않는 지구상의 모든 것을 깡그리 없애는 인간 지상주의를 인류 생존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한다.

이 책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장을 생각나게 한다.

말(馬)의 나라에서 걸리버가 겪게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저자는 지적 수준이 상당한 고릴라를 통해 다시금 떠올리고자 한 것일까. 하지만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지식에 해박한 고릴라가 우화, 비유, 예화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하는 인간문명 비판은 말들의 비판보다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다.

'페달로 날개를 움직이는 비행기를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비행사는 공중에서 느끼는 자유에 황홀감을 느낀다.

그는 발아래 부서진 비행기들을 비웃는다.

"왜 공중의 자유를 누리지 않고 땅에 얽매일까." 그러나 이 비행사는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낙하하고 있을 뿐이다.

비행을 가능케 하는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행사는 자위한다.

"내 비행선은 나를 이렇게 멀리까지 안전하게 태워왔어, 그저 하던 대로 하면 돼."' 생물체 존재의 기본법칙을 부정한 파괴적 인간문명을 이처럼 절묘하게 비유한 우화를 그동안 우화의 대상으로 치부했던 고릴라에게서 듣는 것은 통쾌한 일이다.

그동안 정형화된 이론이나 감성적 자극에 머물러 있던 녹색 담론에 식상해 있던 독자가 고릴라에게서 한 수 가르침을 받는다는 설정은 이 책의 포인트.

고릴라 이스마엘을 길잡이 삼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지켜야 할 생명공동체의 보편 법칙과 인류 생존의 해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책을 덮고 나서도 진한 여운이 감돈다.

스토리를 통해 감동을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고릴라가 던지는 순간순간의 화두는 그만큼 명쾌하기 때문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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