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국치민욕이 이에 이르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에서 진멸될 것이로다. 무릇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음을 기약하는 자는 삶을 얻으리니, 여러분은 이를 양해하라.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써 황은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에게 사죄하노니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음이라.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조력하겠으니 우리 동포 형제는 천만번 더욱 분투하여 뜻을 굳게 하고 학문을 익히며 힘을 합하여 우리의 자주독립을 다시 찾으면 죽은 자는 황천에서도 기꺼워 하리라. 오호라! 영환은 실망하지 않고 우리 2천만 동포에게 삼가 이별을 고하노라!"
1905년 11월 30일 충정공 민영환이 222자로 된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단도로 자결했다. 2주 전(11월 17일)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따지다 일본 헌병들에 의해 강제해산된 뒤 이미 대세가 기울어짐을 보고 나서였다.
이 유서는 12월 5일자 대한매일신보에도 게재됐다. 게재된 유서는 국민들의 항일의식에 불을 붙였고, 한성의 주민들은 종로 거리에 몰려들여 일본헌병대와 투석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일찍이 해외문물에 눈을 뜨고 조선의 개화를 위해 한껏 힘을 썼던 민영환은 순국으로써 자신의 나라사랑을 마무리했다.
▲1900년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타계 ▲1911년 외몽골, 중국 신해혁명 틈타 청나라로부터 독립 선언 ▲1950년 트루먼 미 대통령, 한국전에 원자폭탄 사용 고려 중이라고 선언 ▲1963년 제 1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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