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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조선 최초 이민단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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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 22일, 미국의 상선 갤릭(Gaelic)호가 인천의 제물포항을 출발했다. 갤릭호에는 56명의 남자(통역관 2명 포함)와 여자 21명, 어린이 27명 등 총 104명의 조선 이민단이 타고 있었다. 앞으로 2년 6개월 동안 계속될 모두 7천800여 명의 이주단 중 선발대였다. 다음해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겨운 노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해외이민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민을 주선했던 인물은 주한미국공사였던 알렌. 하와이 사탕농장주들의 로비로 알렌은 고종황제를 설복해 이민 허락을 받아냈다. 그 뒤 알렌과 친밀했던 데쉴러가 인천에 '동서개발주식회사'를 차린 후 노무자를 모집했다. 처음에는 낯선 땅에 대한 거부감 탓에 응하는 이들이 없었다. 인천내리교회의 존스 목사가 나서 "하와이는 아주 살기좋은 곳"이라고 설교하고서야 지원자들이 나타났다.

낯선 땅, 뜨거운 날씨,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하루 10시간에 68센트)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이민단은 억척스런 민족 특유의 기질을 발휘, 하와이 지역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조선인의 하와이 이주는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로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이 한국 정부에 이민중지압력을 행사하면서 중단됐다. 순탄치 않은 이민 초기의 역사였다.

▲1145년 삼국사기 간행 ▲1876년 그레이엄 벨, 전화기 발명 ▲1977년 한국, 수출 100억 달러 달성 ▲1997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석방.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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