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경새재, 왜 비포장 흙길일까?

'문경새재는 왜 흙길이고, 차를 못 다니게 할까?'

지난해 12월 중부 내륙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뚫리면서 운전자들이 한결같이 김천~여주 151.6km 코스 가운데 경치가 제일 좋은 곳으로 '문경새재 주흘산' 꼽기를 주저않는다. 상행선 '문경새재' IC가 나타나면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눈덮인 주흘산은 한폭의 동양화같다.

과거 영남대로(嶺南大路)였던 문경새재. 새도 날기 힘든 고개, 또는 억새가 많다 해서 '새재'라 불렀던 곳. 옛날 청운의 뜻을 품은 영남 선비들이, 그리고 보부상과 궁중 진상품이 충주 남한강 뱃길까지 가려면 꼭 넘어야 했던 길. 그러나 이젠 '문경새재'하면 '맨발'이 먼저 연상될 만큼 포장 안된 옛 흙길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출발, 제3관문 조령관까지 6.5㎞ 새재길은 왜 지금껏 도로포장을 않고 있을까.

이는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안보온천에서 하룻밤을 묵은 박 대통령은 당시 충북쪽 도로를 이용, 문경새재 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다. 당시 문경의 채문식(蔡汶植) 국회의원은 때마침 귀향활동 중 대통령의 새재방문 소식을 전해 듣고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은 채 의원을 보고 "채 의원이 왜 여기에 계시냐, 문경이 고향이시구만"하며 인사를 나눈 뒤 일행들과 1관문까지 걸었다. 대통령은 문경초교 교사시절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곳에서 '트럼펫'을 밤 늦도록 분 이야기 등 지난날 추억을 더듬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하산하는 도중, 차량이 먼지를 일으키며 한두 대쯤 지나가자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이 1관문에 도착하자 문경초교 제자 40여 명과 당시 정용운 문경군수와 주민들이 마중했다. 이때 정 군수가 문경새재 도로 포장을 건의하자 대통령은 "여기는 포장을 하지 말고 차도 다니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대신 문경초교 도서관 건립비와 문경새재 가꾸기 사업비를 지원했다.

대통령 방문으로 불붙기 시작한 문경새재 가꾸기사업은 정 군수 다음인 석진후 군수까지 이어져 78년 말 지금처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반듯한 도로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문경군청 박재춘 토목계장과 장인석(현 소방방재청 복구과장)씨는 물차까지 자체 제작해 덤프트럭이 마사토를 부어 놓으면 물을 뿌려가면서 다지고 또 다졌다.

문경새재 가꾸기는 대통령 지시사업이었던 만큼, 당시 경북도지사는 물론 중앙부처에서도 수시로 찾아 관심을 가졌다. 장씨 경우는 공로를 인정받아 후일 도청으로 전보되기도 했다. 문경새재 도로가 새로 단장되자 대통령은 79년 봄 다시 문경새재를 찾아 둘러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뒤 최규하 대통령이 새재 방문 때 주민들이 매표소와 상가, 주자창 주변은 흙먼지가 난다며 포장지원을 건의하자 전임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고(?) 현재 1관문까지 포장토록 했다. 이 같은 사연을 간직한 문경새재 흙길을 관광객들이 하나 둘씩 신발을 벗고 걷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얻게 됐다.

지난 2001년에는 당시 문경시산악연맹회장이던 박인원 현 문경시장이 '제1회 문경새재 맨발 걷기대회'를 열어 5천 벌의 티셔츠가 모자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후 맨발걷기대회가 거듭되면서 참가자들이 더욱 늘어나 지난해는 1만5천여 명이 운집해 최고의 문경새재 홍보가 되기도 했다. 서울의 진상태(80)씨 경우는 문경새재 흙길이 만들어진 뒤 현재까지 거의 매주 찾아 무려 650여 회에 걸쳐 새재를 방문했을 정도.

문경새재관리사무소 김병옥 소장은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새재에 오면 언제나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최근에는 추위 속에서도 반바지 차림으로 걷는 사람이 있는 등 새재 마니아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흙길 덕분에 많은 이름 모를 새들이 찾고 있고, 들풀과 들꽃의 천국이 되고 있는 문경새재는 이젠 수달까지 식구가 돼 함께 살고 있는 대자연 속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문경새재 국도변 입구의 '문경새재'라는 박 대통령의 돌비석 휘호와 이를 복사해 '영남대로 문경문'에 걸어둔 현판만이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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