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4년째 쓰는 살림9단 남진희씨

"엄마는 가정경제 CEO죠"

가계부 쓰기. 남자들이 새해 초 금연을 결심하는 것처럼 가계부는 주부들이 새해가 되면 의욕적으로 시작하다가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것 중의 하나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가계부를 쓰는 주부는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꼼꼼히 가계부를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달성군 논공읍에 사는 주부 남진희(38)씨는 가계부 쓰기가 어렵기는커녕 오히려 재미있다고 한다. 결혼하면서 쓰기 시작한 가계부가 모두 13권. 새해, 아직 대부분이 빈 공간인 14권째 가계부는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까. 그녀의 가계부 쓰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계부는 기록하는 습관

'두부 1천 원, 양념 어묵 2천 원, 팽이 700원, 수빈'수인이 용돈 2천900원, 불우이웃돕기 6천200원….'

인쇄한 것처럼 깨알 같은 크기로 정성스레 써놓은 글씨들. 상고 출신으로 자재부에 근무했었다는 남씨는 혼자서도 쓰면서 놀고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고 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죠. 애들이 일기를 쓰듯 저녁에 매일 가계부를 써요." 그녀는 저녁에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니 가계부를 안 쓰면 마음이 꺼림칙할 정도란다.

"슈퍼마켓에서 받은 영수증도 세금 영수증처럼 모아봤는데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가계부에 끼워놨다가 저녁에 한꺼번에 적어요."

가계부에는 식비, 주거비, 피복비, 교육비, 보건위생비 등 항목별로 지출내역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단순히 돈을 쓴 내용만 적어둔 것이 아니라 매달 수입, 이자, 지출, 잔액 결산을 내 살림살이가 흑자인지 적자인지 수입 증감 상태를 기록하고 연간 통계를 내 전년도 살림과 비교까지 해놓았다. 신용카드 사용, 연료비 등은 월별로 따로 기록해 매달 살림살이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하고, 한 번에 목돈을 들여 10만 원 이상 지출한 것은 특별비 항목으로 따로 책정해 두었다.

"내 집 생활이니까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얼마나 쓰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엄마가 늘 기록하는 걸 보아서인지 애들도 수첩만 생기면 용돈 받아쓴 것을 조목조목 잘 적고 친구 주소록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요."

▲가계부는 힘들게 일하는 남편에 대한 예의

"가계부를 쓰면 낭비를 안 하게 되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한 번 참게 되죠."

남씨는 경기가 어려워 남편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는데 아내가 가계부를 정성껏 쓰는 걸 보면 힘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남편이 조금 벌어와 가계부에 쓸 게 없다고 불평하는 주부들을 보면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그 정도라도 벌어오니 그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남편이 애써 벌어온 것을 감사히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남씨의 지난해 가계부에는 교육비가 전체의 19%로 전년도의 18%보다 늘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수빈(12)이, 1학년인 수인(8)이 앞으로 들어가는 한 달 교육비가 50만 원 이상 든다.

"수빈이 피아노 학원비도 체르니 40 과정으로 들어가니 9만 원으로 오르고 영어학원 10만 원, 학습지도 3만3천 원으로 많이 올랐어요. 수인이도 학교에 가 주위 친구들처럼 피아노, 태권도, 학습지 정도는 해야 하니 교육비 부담이 더 느는 것 같아요."

남씨는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하니 저절로 알뜰히 살게 된다고 말한다. 주말부부로 충북 영동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 양충기(39)씨도 94년식 엑셀 승용차를 아직 타고다닐 정도로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가계부를 보며 남편과 얘기했어요. 결혼 13주년인 올 3월에 새 차로 바꾸자고요. 새해에는 가족 모두 건강하고 집 평수를 넓혀 이사가는 게 소망입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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