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K君에게

도대체 이유가 없지 않으냐 말이다, 이 친구야. 왜 삼성라이온즈보다 엘지 트윈스를 더 좋아한다고 이야기도 못하게 하냔 말이다.

왜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친구를 그렇게 심하게 면박하고 친구들끼리 소주 마시는 자리에도 잘 끼워주지 않은 것인가. 왜 소주 대신 막걸리나 양주 먹는 것은 괜찮아도 자네가 먹는 소주가 아닌 다른 소주를 달라고 하면 소리를 버럭 지르냔 말이야.

K군, 자네가 어디 사리 분별력이 없는 사람인가? 문학을 모르나, 연극·영화를 모르나, 사랑을 못 하나? 내가 본 자네는 서울의 P군보다 시인 김수영을 더 잘 이해하고 있고, 대전의 D군보다 더 뮤지컬 '캣츠'에 대해 흥분하였지. 그리고 광주 사는 W군보다 더 화끈한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자네는 내가 못 본 짧은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꼭꼭 울타리를 치고 벽을 쌓고 있었던 건가? 자네는 아직도 종종 우리보다 광주 사람들이 더 심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지 않는가?

내가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된 10여 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대구로 내려온 지도 4년이 되었네. 요사이 가끔씩 업무 때문에 외지를 방문하여 보면 대구는 이미 '왕따'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네, 이 사람아.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외지 사람들은 예전의 '광주'처럼 지금 우리 고향이 왕따가 되었다고들 하네. 내가 자네 대신 그 사람들 멱살을 잡아주었어야 옳을까?

대기업 임직원이 대구, 경북으로 전보 발령을 받으면 사표를 써라는 이야기인지 고심해 봐야 한다고 하고, 승진 등으로 지역 근무를 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최후 순위로 적어내는 곳이 대구, 경북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인가, 못 들은 척하는 것인가?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대구 생활 1년여를 마치고 떠나면서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난 다시는 대구에 가지 않겠다.

'라고 맹세를 하더라는군. 이래서야 우리 고향은 장차 어찌 되겠는가, 또 다른 어떤 분은 우리 고향이 '왕따'에서 벗어나는 데는 적어도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시더군. 그분 고향도 자네 고향과 멀지 않은 곳이라네.

이제 편지라도 쓰세. 자네가 아는 서울 간 친구들에게 우선 편지를 쓰고, 한나라당 아닌 다른 당의 홈페이지도 한 번 들어가서 글을 남겨 보세. 엘지 트윈스 팬들이 왜 그리 열렬히 응원을 해 대는지 이유도 한 번 물어 보자고.

K군, 같은 회사에 있다던 서울에서 온 P씨를 집으로 한 번 초대해 보게나. 그동안 자네들끼리만 어울려 다녀서 P씨는 적적하게 혼자 대구 생활을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나? 마음이 쉬 열리지 않으면 우선 귀라도 열어보세.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어보자고. P씨는 서울로 돌아가서 자네와 우리 고향을 따뜻하게 기억할 걸세.

이야기를 꺼내 놓고 보니 약간 미안하네. 실은 자네가 그리 잘못한 것이 없는지도 모르지. 외지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우리를 이상한 사람들로 몰아가는지도 모르지. 그냥 그 사람들 이야기 못 들은 척하고 이제껏 살아 온 대로 계속 살아도 될까?

근데 역시 그건 안 되겠네,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새해 벽두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자네의 시간을 뺏은 이유가 뭐겠나? '왕따' 동네가 아니라 모두가 가 보고 싶어 하고 살아 보고 싶어 하는 곳을 우리 아이들의 고향으로 물려주고 싶은 거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삼성라이온즈를 계속 응원하는 것도, 한나라당 만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대구산 소주를 더 좋아하는 것도 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네. 자네와 다른 생각, 다른 입맛을 가진 사람을 인정해 주기만 하면 되네. 자네와 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네. 그럼, 내일 목련시장 국밥집 약속 잊지 말고 나오게.

강정한

△대구 대건고, 고려대 법대 졸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0기 △2001 우리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변리사·세무사 등록 △현 강정한 법률사무소 변호사, 대구경북본부세관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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